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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인들 중에는 특이한 여인네들이 많다. 이를테면 가부장 사회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세기의 난봉꾼이 되기로 결심해 다니는 직장에서마다 스캔들을 일으킨다거나, 아예 반대로 남녀를 불문하고 일상적으로 공격성을 발휘해 왕따를 자처하는 이도 있다. 제가 남자를 쥐고 흔든다며 자신만만하게 굴지만, 되려 목 매며 울고 불고 하는 딱한 여인네도 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둥 온갖 치기를 함께 부리는 것으로 부끄러운 자신을 달래며 산다. 어쩌면 누구나, 자기 자신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울 것이다. 그래도 뻔뻔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혜성처럼 <미쓰 홍당무>가 나타났다. 언론 시사 직후 쏟아지는 찬사를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부산영화제에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저 김삼순 류의 노처녀 판타지 정도일거라 지레 짐작했다.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미쓰 홍당무인 양미숙(공효진)이 말했다. "나는 내가 부끄러워 죽겠어"

양미숙은 정말 부끄러운 여자다. 누가 이런 여자의 친구가 되려고 할까. 누가 애인이 되려고 할까. 얼굴은 수시로 벌겋게 달아올라 보기가 민망할 정도고, 쨍그랑 거리는 목소리는 항상 누군가를 쏘아붙일 태세다. 성격은 좀 별나. 영화 시작부터 짝사랑하는 유부남 동료 서 선생(이종혁)을 앞에 두고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에요. 이렇게 서 선생님이 제 앞에 서 있는 것도 다 저와 말 못할 감정이 있기 때문 아니겠어요?"라며 자꾸 애정 표현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사랑을 구걸하고 있는 주제에 큰소리는 먼저 친다. 너도 나 좋아하잖아, 맞잖아, 바보같이 왜 감정을 속이려고 하니? 라고 떽떽거리고 있는데 사실은 양미숙의 공허한 절규에 불과하다. 이런 비극이 있나.

<미쓰 홍당무>는 비 모범적인 여성들의 비일상적인 행동들을 늘어놓고 순서를 가늠할 수 없는 퍼즐 맞추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퍼즐이 한조각 한조각씩 맞춰지면 저렇게 이상하고 괴상한 여인의 얼굴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귓속말 한마디, 어깨를 두드리던 손짓 같은 것에 광분하며 순정을 바치던 소싯적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완전히 해체됐다가 영화 속에서 재구성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왜 세컨드에서 만족을 못해? 무조건 일등, 일등. 천박하게스리" 양미숙이 말했다. 그래, 왜 세컨드에서 만족을 못해? 일등 지상주의는 천박한 거잖아. 참한 신부감도 능력있는 알파걸도 못되지만 적어도 제 밥벌이는 성심성의껏 하며 생긴대로 살아보겠다는 여인들에게 필견을 권한다. 송순진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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