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본색> (英雄本色, 1986)
학교가 끝나면 가방 내팽겨 치고 산과 들에서 뛰어 놀던 중학 시절, 캐나다 고모네 집을 방문한 할아버지가 신기한 물건을 하나 가지고 오셨다. ‘RCA’란 이름의 VTR이었다. 영화의 ‘ㅇ’자도 모르던 당시에는 이 기계가 한 시골소년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몰랐다. 그때 처음 본 영화가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이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형과 함께 TV 앞에 앉아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더빙 안 된 영화를 본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 듣는 ‘중국말’에 놀랄 새도 없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화염에 넋을 놓고 말았다. 그때는 총알이 한정돼 있다는 것도, 권총이란 물건이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사실도 몰랐다. 단지 나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수많은 적을 정면으로 맞서는 주윤발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 뿐이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좁은 방에서 아버지와 형에게 들키기 싫어 애써 눈물을 참았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주윤발이 장국영의 목을 잡고 “형제란...” 대사를 할 때 총알이 주윤발의 뒤통수를 뚫고 피가 장국영의 얼굴에 쏟아지는 순간, 나 또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형은 “<영웅본색> 보면서 이렇게 우는 놈은 대한민국에 너밖에 없을 거”라며 놀렸다. 그때 러닝 타임의 절반 동안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비디오 가게를 전전했고,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FILMON의 농촌총각이 됐다. 안효원 기자(FILMON)
<구니스> (The Goonies, 1985)
흐린 기억 속의 흑백화면으로 간신히 기억한다. 방에서 혼자 자그마한 배불뚝이TV로 이 영화를 처음 봤다. 확실히 대낮이었고 케이블이 없던 시절이니 아마도 명절 특집이었나 보다. 난 ‘국민학교’ 저학년이었을 것이고. 영화가 뭔지도 모르던 코흘리개에게 <구니스>는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눈이 시원해지는 이국적 풍광이 펼쳐졌고, 조마조마한 모험과 스릴이 있었다. 뜨거운 가족애와 가슴 시린 우정이 있었고, 배시시한 유머와 찌릿한 기괴함도 맛보게 했다. 이게 영화라는 건가. 이게 할리우드 영화라는 거구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그 충격은 학년이 올라가고 영화가 뭔지 알게 되면서 내 취향의 일부를 지배하게 됐다. 모험과 성장, 뚜렷한 개성의 캐릭터들, 탁 트인 로케이션과 징글징글한 특수효과, 그리고 약간의 과장이 곁들여진 영민한 스토리. 할리우드 어드벤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와 형식이 공식처럼 들어앉은 <구니스>는 나에게 영화는 이렇게 재미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치아교정기와 천식 흡입기를 달고 다니는 훈훈한 소년 마이키, 숀 애스틴은 내 생애 첫 배우였고, 그 후로도 난 그의 흔적을 찾아다녔다(<멤피스 벨>은 순전히 애스틴이 나와서 봤고, <캠퍼스 군단>(Toy Soldiers)에서 그는 또 한 번 날 설레게 했다. 지금이야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 친구 샘’이 돼 버렸지만…). <구니스>는 내 생애 최초의 영화이자 여전히 날 들뜨게 하는 영화다. 소년들의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 응원가처럼 흘러나온 신디 로퍼의 ‘The Goonies ‘R’ Good Enough’는 들을 때마다 가슴 뛴다. 정미래 기자(FILMON)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 1985)
그저 만화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던 시절이 있었다. 콤바트라V의 초전자요요에 열광했고, 타이거마스크에 환호하며, <이상한 나라의 폴>을 보며 욕하던 시절이다.(니나는 도대체 언제 구할거니!) 그렇게 코흘리개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싼 고급 문화생활인 줄도 모르고 비디오 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어느 날, 비디오 가게 사장님이 드디어 만화영화 아닌 그냥 영화를 추천해주시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그때의 내 기분이 정확히 기억나는데, 난 정말 그의 추천이 내키지 않았다.(이는 어쩌면 나의 고결한 취향에 대한 생애 최초의 태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냥 니나의 행방이 궁금할 뿐이고, 볼트화이브의 천공검 필살기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속는 셈 치고, 그리고 이제는 드디어 어른의 반열에 오르는구나 싶은 아찔한 부담을 안고 그렇게 <백 투 더 퓨쳐> 테이프를 받아들었다. 허나 웬걸. 시간여행이라는 이 낯선 이야기는 88마일로 내달려 고교시절 어머니를 만나고 현재로 돌아와 헝클어진 상황을 되돌려 놓기까지, 정말 몸살 날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렇게 내 것도 아닌 빌려온 <백 투 더 퓨쳐>를 근 한 달 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른다.(사장님 미안) 물론 그때 그 느낌은 심지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효하다. 오락영화나 SF라면 모름지기 <백 투 더 퓨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커트라인. 그리고 케이블 채널을 하염없이 돌리다가도 드로이언의 자태에는 또 다시 매료되는 오늘날 나의 모습은 그 옛날 넋을 놓고 타임머신을 탐닉하던 소년시절 그대로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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