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닮을 수가 있을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워낭소리>와 그의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워낭소리>는 농부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40년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충렬 감독은 그들의 삶 속에서 돈이나 수량으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들을 포착함으로써, 생명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다. 노인, 농촌, 늙은 소 등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 이야기는 짙은 그리움의 정서를 품고 있다. <워낭소리 OST>는 그 그리움의 정서를 청각적으로 잘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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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열면 먼저 ‘여백의 소리’가 우리를 찾아온다. 이들의 음악은 고개를 쳐들거나,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피아노, 대금, 첼로 등은 보조를 맞춰 등장하며, 함께 연주를 할 때도 서로를 소리를 탐하지 않는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소리와 소리 사이의 여백까지 느낄 수 있다. 그 공간을 듣는 이가 자신의 감정으로 채울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워낭소리>의 영상도 마찬가지다. 작품은 등장인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기 보다는 그들이 걸었던 길, 웃고 한숨짓던 들판을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다. 관객은 그곳에서 함께 숨을 쉰다.
여백의 소리와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은 느린 호흡이다. 느린 템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름다운 멜로디는 귀보다 먼저 가슴에 닿는다. 이 멜로디의 호흡은 할아버지와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은 소의 발걸음과 같다. 나뭇짐을 지고 나란히 걷는 할아버지와 소의 느린 발걸음. 이들의 발걸음이 힘겹기는 하지만, 그만큼 더욱 소중하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느린 전개로 소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이처럼 작품과 닮아 있는 음악은 <워낭소리>를 구성하는 큰 요소이면서, 그 감동을 되새김질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나의 완성된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워낭소리 OST>는 더욱 흥미로운 앨범이다. 앨범은 5번 트랙 <새벽>을 중심으로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같은 원곡을 다르게 편곡해 전, 후반부에 배치하면서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전반부에 피아노, 대금, 첼로 등 비교적 소수의 악기가 활용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드럼, 기타, 건반, 해금 등이 추가되면서 감정의 진폭을 더욱 크게 만든다. 이야기에 비유하자면 전반부는 기억, 과거로의 회귀라면, 후반부는 지금, 여기로의 복귀라 할 수 있다.
1번 트랙 ‘메인 테마’는 도시의 거리에서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피아노 소리. 하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결국 자리에 멈춰서면 들려오는 구슬픈 대금 소리. 뭔가 사연을 품은 듯한 그 소리에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함께 들려오는 묵직한 첼로 소리는 그 속에 쉽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암시한다. 2번 트랙 ‘따북네(라디오)’는 그 비밀의 힌트를 준다. 강원도 정선지방의 토속민요 ‘따북따북 따북네야’를 새롭게 편곡한 이곡은 이별의 정서가 가득하다. 우리가 이별한, 잊어버린, 이번 여행에서 찾아야할 것을 무엇일까.
대금과 피아노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3번 트랙 ‘공감’, ‘메인테마’의 다른 편곡으로 고음의 피아노가 등장해 여행의 종착점에 가까이 왔음을 암시하는 4번 트랙 ‘무너진 외양간’을 지나면 우리는 ‘새벽’을 만난다. 5번 트랙 ‘새벽’은 그동안의 여정과는 사뭇 다르다. 이전의 음악이 주로 상승의 멜로디를 가졌다면, ‘새벽’은 새벽녘 짙게 핀 안개와 같은 하강의 멜로디를 갖는다. 이 멜로디가 주는 포근함과 안정감은 우리가 종착점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가다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재생의 공간. 그곳에는 소여물을 정성스레 준비하는 할아버지의 소리가 있다.(6번 트랙 ‘동행’)
돌아갈 시간이 된 걸까. 5번 트랙의 다른 편곡 7번 트랙 ‘죽음’에 사용된 건반은 몸을 휘감으며 우리를 몸을 일으킨다.(건반은 영화에서 주로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 많이 쓰인다.) 돌아오는 길에는 친구가 생겼다. 8번 트랙 ‘Missing’에는 해금, 하모니카, 드럼이 친구가 되어주고, 9번 트랙 ‘따북네(Original)’ 또한 2번 트랙과 달리 기타와 코러스가 슬픔을 위로한다. 이제 짧은 여행을 마감할 시간이다. 우리는 10번 트랙 ‘동행’과 함께 지금, 여기로 돌아와야 한다. 앨범의 다른 곡들과 달리 빠른 템포를 갖는 ‘동행’은 기타와 드럼은 물론 대금 소리마저 경쾌하다.
우연일까. <워낭소리 OST>를 들으며 잠시 떠난 여행은 관객이 <워낭소리>를 보고 나오는 행동과 닮아 있다. 출발, 도착, 복귀, 그리고 다시 오늘. 그 끝없는 회귀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그리움. 그리고 다시 나의 몫으로 남겨는 오늘의 삶까지. 그러나 우리는 덜 외로울 수 있다. 종착점에서 만난 소중한 것들이 어느덧 나의 살에 묻어있을 테니까. 바람에 실려 찾아온 <워낭소리 OST>는 러닝타임이 20분이 조금 넘는 짧은 앨범이다. 하지만 영화의 감동을 재생하는 데는 충분하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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