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벽두부터 한국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영화는 단연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다. 2008년 이미 400만 관객을 찍고 새해를 맞은 <과속스캔들>은 무서운 뒷심으로 개봉 11주차인 2월 14일 8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스크린 확장세가 놀라운 <워낭소리>는 개봉 5주차인 2월 15일까지 1명 모자란 71만 관객을 동원했다.(배급사 집계) 여기서 ‘흥행 대박=좋은 영화’란 영양가 없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주목하는 건, 두 편의 영화가 한국 극장가에서 몇 년간 지속된 ‘스크린 독과점’을 깰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다는 거다.
먼저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얘기를 잠시 하자.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06년 <괴물>이 전국 620개 개봉하면서다. <괴물>의 흥행 속도는 무서웠고, 스크린 독과점이 <100분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이때 현 영화진흥위원회 강한섭 위원장이 스크린 독과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향후 스크린 독과점을 어떻게 파헤칠지 주목해보자.) 하지만 <괴물>은 애교였다. 2007년 여름 개봉한 영화 스크린수를 보면,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다.
<디워> 689개, <트랜스포머> 650개,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691개에 <스파이더맨3> 816개,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는 912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2007년 전국 스크린수 1975개, 영화진흥위원회 자료) 쉽게 감이 안온다고? 멀티플렉스에 영화를 보러 갔는데, 10개 스크린 중 5개관에서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를 하고 있는 거다. 2008년은 상대적으로 덜 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825개, <강철중> 659개, <인디아나 존스 4: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660개 정도이다.(공교롭게도 2008년 언급한 세 영화 모두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영화다.)
이런 스크린 독과점은 영화들 간의 경쟁을 치열하게 해서 수익의 편차를 크게 만든다. 결국 승자는 소수의 블록버스터다. 많은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하지도 못하고 사라진다. 결국 개별 영화의 수익률은 점점 낮아진다.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고, 상영하는 입장에서 누구하나 좋을 게 없다. 좋지 않은 건 관객도 마찬가지다. 한 영화가 많은 스크린을 잡고 있을 때, 관객은 다른 영화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한다. 또 어느덧 사라져 그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또 대형 멀티플렉스의 영향력이 더 강해지고, 필름이 아닌 파일로 영화를 배급할 수 있는 본격적인 디지털 시네마가 열리면 상황은 더욱 낙관하기 힘들어진다.(현재 CGV, 프리머스시네마,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씨너스가 전국 스크린의 70.9%를 차지한다. 기사 말미에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폐해를 자세히 언급하겠다.)
이제 다시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로 돌아오자. <과속스캔들>은 지난해 12월 3일 전국 401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첫 주 70만 관객을 기록한 <과속스캔들>은 2주차에 160만, 3주차에 260만, 4주차에 드디어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러한 속도는 <괴물>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에 비하면 턱없이 늦다. 하지만 <과속스캔들>은 느리지만 꾸준했다. 입소문을 탄 <과속스캔들>은 개봉 8주차가 돼서야 스크린이 300개 밑으로 내려갔고, 지금도 200개 이상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과속스캔들>은 다른 영화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셈이다.
<워낭소리>는 1월 15일 전국 7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워낭소리>는 개봉 4주차인 2월 8일 스크린이 70개로 확대됐고, 전국 30만 관객을 돌파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스크린은 개봉 5주차인 2월 15일까지 127개로 확대됐고, 70만 관객을 넘어서며 무서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에서 <원스>의 성공과 비슷하다. 2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원스>는 3개월 후 150개 스크린에서 상영됬고, 개봉 23주가 지난 뒤에도 25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이처럼 <과속스캔들>과 <원스>는 오랜 시간 관객의 곁에서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다. 한편으로 두 작품이 상영되는 가운데 큰 영화 한 편이 등장해 이들이 상영될 기회를 얻지 못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찔한 생각이 든다.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는 ‘치고, 빠지기’가 아니라, ‘롱런’하는 근래 보기 힘든 작품들이다. 이를 통해 우리 영화계는 배울 것이 많다. 한편의 영화로 대박을 노리기보다는 각 작품이 관객들과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좋은 입소문을 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 스크린 독과점은 배급사와 마케팅이 관객에게 어떤 영화를 보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이제 영화는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는 영화가 좋다면 ‘시간’이 ‘흥행’을 만들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준 영화이다.
올해는 어떨지 궁금하다. 만약 극장에서 스크린 독과점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극장은 ‘영화, 이상의 감동’ 등 거창한 슬로건을 내리고, 영화인들 또한 ‘한국영화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하지 말자. 관객은 극장과 영화인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객체가 아니다. 영화를 선택하고, 감상할 수 있는 주체이다. 안효원 기자(FILMON)
스크린 독과점
스크린 독과점이 나쁘다고 하면, 자기 영화 갖고 자기 극장에서 맘대로 튼다는데 ‘왠 시비’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확실하다. 스크린 독과점은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될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스크린을 많이 확보한 영화에게 득이 될 수 있겠으나, 영화를 만드는 주체가 단 한 편에 목숨 거는 게 아니라면, 스크린 독과점의 후폭풍은 반드시 찾아오게 돼 있다. 왜? 한 제작사, 배급사가 언제나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 등과 같은 블록버스터를 만들거나 배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대 개봉일 최고 기록 50만 명, 1일 관객동원 최고기록 82만 5천 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던 <스파이더맨3>는 3주후 <캐리비안의 해적>이 등장하고 곧 꼬리를 내렸다. 이처럼 스크린 독과점은 영화 순환의 주기를 짧게 한다. 그것은 불록버스터,작은 영화 모두 예외없다.
그렇다면 극장에겐 이익일까? 다음 자료를 보자.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시작된 2006년 전국 스크린수은 전년보다 14% 증가한 1880개였다. 하지만 관객 증가율은 그의 33% 수준인 5.4%에 머물렀다. 2007년은 그나마 상황이 좋아 스크린 증가율 5%(1972개)와 관객 증가율 3.5%의 차이가 줄었다. 하지만 2008년에 스크린 증가율이 5.3%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증가율은 오히려 5% 감소하면서 극장가에서는 한숨만 들렸다. 쉽게 말해 스크린은 늘어도, 관객은 그만큼 늘지 않는다는 거다. 스크린 독과점이 관객수 저하의 직접적인 요인인지 아닌지는 좀 더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로써 스크린 독과점이 관객수 상승의 요인이 되지 않음은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관객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극장을 찾았을 때 1편의 영화가 4, 5개 스크린에서 상영이 될 때 기분이 어떤가. 반대로 개봉 2, 3주차에 영화를 보러 갔는데 벌써 영화가 내려가 있으면 또 기분이 어떤가. <스파이더맨3>가 그랬다. 용산CGV11은 <스파이더맨3> 개봉일 전체 스크린의 2/3에 가까운 7개관에서 상영했다. 하지만 3주 뒤에는 단 1관에서, 그것도 하루에 단 3번(오후 5시, 밤 11시, 1시)에 상영됐다. 그만큼 관객의 순발력이 뛰어나야,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거다.
이게 특별한 영화의 특별한 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 영화를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 해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380~390편 정도다. 1년이 365일이니까, 하루에 1편 이상 영화가 등장하는 셈이다. 관대하게 계산해 한 주일에 7편이 개봉한다고 치자. 한 주가 지나면 영화는 총 14편, 두 주가 지나면 영화는 총 21편이 된다. 그런데 소수의 영화 한, 두 편이 1천개가 훌쩍 넘는 스크린을 차지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말 그대로 ‘박 터지게’ 싸우는 거다. 특정 시기에만 그러는 거 아니냐고? 배급업자들은 큰 영화를 피해 알아서 피한다. 그럼 결국 또 다른 시기에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된다. 결국 초반에 반짝 하지 않으면 영화는 사라지고, 관객은 그 영화를 스크린에서는 영영 볼 수 없다. 관객의 볼 권리가 ‘그다지’ 충족되고 있지 않은 극장가, 그게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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