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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을 받은 대니 보일 감독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영화 <풀 몬티>의 작가 사이몬 뷰포이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된다. 평소 사이몬 뷰포이를 좋아하던 대니 보일은 각본을 10~15페이지 정도 읽고 나서 바로 영화화를 결심했다. 대니 보일 감독은 한 소년의 경험을 일직선상의 흐름으로 끌고 가는 것을 배제하고, 퀴즈쇼라는 형식을 빌려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왕래했다. 여기에 긴장감 넘치는 퀴즈쇼 장면, 인도의 전통음악과 사람들의 환호를 닮은 흥겨운 음악이 더해져 아카데미상 8관왕에 빛나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탄생했다.
사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선전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 작품은 이미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관심은 ‘아카데미협회가 이런 예상을 뒤집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갈 것인가’였다. 그런데 아카데미협회는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손을 들어 줬고, 이변은 없었다. 이번 작품으로 첫 노미네이트에 감독상까지 수상한 대니 보일 감독은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든 아니든 모든 뭄바이 시민들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히스 레저, 이 박수 소리가 들리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작품상, 감독상 경합을 벌인 <밀크>와 <더 리더>는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에 각각 숀 펜과 케이트 윈슬렛의 이름을 올렸다. <밀크>에서 게이 인권운동가이자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이었던 실존 인물 하비 밀크를 연기한 숀 펜은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브래드 피트, <프로스트 vs 닉슨>의 프랭크 란젤라 등의 강력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미스틱 리버>(2003)에 이어 두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이번 연기로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더 레슬러>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미키 루크는 골든글로브와 BAFTA에서의 남우주연상 수상에 만족했다.
골든글로브와 BAFTA에서 각각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더 리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케이트 윈슬렛은 마침내 <더 리더>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섯 번의 도전 끝에 그 주인공이 됐다. <더 리더>에서 케이트 윈슬렛은 한 소년과 수십 년간 이어지는 애틋한 사랑을 하는 여인 한나를 연기하는데, 그녀의 연기는 한 남자의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아 갈 만큼 신비스럽다는 평이다. 케이트 윈슬렛은 수상소감에서 “(<다우트>의) 메릴 스트립과 함께 후보에 오른 게 믿을 수 없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호흡을 맞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그녀는 사랑의 꿈과 현실에서 오는 차이로 인해 힘겨워하는 에이프릴을 연기해 슬픔 가득한 내면 연기를 펼친다.
남우조연상은 <다크 나이트>에서 소름 끼치는 연기를 펼친, 그러나 이미 고인이 된 히스 레저가 받았다. 히스 레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아카데미상 수상, 이 순간은 81회 아카데미 시상식 중 가장 뜨거운 순간 중 하나였다. 코닥극장을 찾은 영화인들과 관객들은 고인의 유족들이 시상대로 올라가는 동안 기립 박수를 보내며 축하와 추모의 뜻을 함께 전했다.
대리 수상을 한 아버지 킴 레저는 “아들의 놀라운 연기를 알아준 아카데미와 워너브라더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등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며, “이 상은 그의 조용한 신념이 옳았음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골든글로브와 BAFTA에 이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그는 좋은 연기는 결코 죽지 않음을 보여 줬다. 배우가 숨진 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1976년 남우주연상을 탄 고 피터 핀치 이후 두 번째이다. 한편 여우조연상은 우디 앨런의 신작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 열연한 페넬로페 크루즈의 몫으로 돌아갔다.
브래드 피트, 괜찮아 다음 기회가 있잖아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미술상, 시각효과상, 분장상 등 3개 부문의 상을 받는 데 그쳤다. 노인의 몸을 갖고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 버튼의 삶을 추적하면서 인생의 죽음, 탄생, 사랑에 대한 폭넓은 질문을 던진 이 작품은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하지만 모든 영광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양보하고, 기술 부문의 3개 상을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미술상, 시각효과상, 분장상 수상은 영화의 ‘때깔’을 확실히 보장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대륙과 바다 위 풍경은 노년, 중년을 거쳐 청년이 된 벤자민(브래드 피트)만큼 훌륭하다. 한편 폭넓은 연령의 인물을 소화하고, 젊음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낸 브래드 피트는 <체인질링>에서 깊이 있는 감성 연기를 펼친 안젤리나 졸리와 공동 수상을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수상에는 모두 실패했다.
장편 애니메이션상은 픽사의 <월-E>가 <쿵푸 팬더> <볼트>를 제치고 최고 애니메이션의 영광을 안았다. <월-E>는 어떤 장면을 캡처해도 한 폭의 그림이 나올 법한 수려한 영상미와 월-E, 이브 등 사랑스러운 캐릭터들로 2008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또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이야기 또한 탄탄하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월-E와 이브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월-E>에 최고의 상을 수상케 했다. <월-E> 또한 골든글로브, BAFTA에 이은 연속 수상이다.
이밖에도 각본상 <밀크>, 의상상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 음향편집상 <다크 나이트>, 외국어영화상 <굿 바이>, 다큐멘터리상(장편) <맨 온 와이어>, 다큐멘터리상(단편) <스마일 핑키>, 애니메이션상(단편) <라 메종 앙 프티 큐브>, 단편영화상 <토이랜드> 등 총 24개 아카데미 트로피의 주인공이 결정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막을 내렸다.
한국 극장가, ‘아카데미 2라운드’ 격돌
코닥극장에서 열린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끝났지만, 한국 극장가에서 펼쳐질 ‘2라운드’는 이제 시작이다. 아카데미상 8관왕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3월 19일 개봉하며, 각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배출한 <밀크>와 <더 리더>는 3월 26일 나란히 개봉할 예정이다. 케이트 윈슬렛을 먼저 만나고 싶다면 2월 19일 개봉한 샘 맨더스 감독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또 기술 부문 3관왕을 차지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지난 2월 12일 개봉했으며, 고 히스 레저에게 남우조연상의 영광을 안긴 <다크 나이트>는 2월 19일 재개봉을 했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작품들만 보면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는 것은 시상식의 절반만 맛보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승자의 기쁨을 다 이해할 수 없듯이 수상작들과 경합한 후보작들을 우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2월 12일 개봉한 <다우트>다. 메릴 스트립의 여주주연상 후보 등 5개 부문에 오른 이 작품은 긴장감 넘치는 극 전개로 신념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의 연기 대결이 압권이다.
3월 5일 개봉하는 <프로스트 vs 닉슨> <더 레슬러> 또한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임기를 남겨 두고 물러난 닉슨 대통령과 방송인 프로스트가 펼치는 긴장감 넘치는 인터뷰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닉슨 대통령을 연기한 프랭크 란젤라는 자신감 넘치는 정치인의 모습과 권력을 잃은 쓸쓸한 인간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이 작품은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더 레슬러>는 퇴물 레슬러를 연기한 미키 루크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점치게 했던 작품이다. 화려했던 시절은 가고 외로움만 가득한 링 위에서 숨쉬기조차 힘든 한 레슬러의 삶이 때론 감동적으로, 때론 슬프게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한국의 관객들은 어떤 영화를 최고의 작품으로 선택할지, ‘아카데미 2라운드’는 이제 시작이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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