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표류기> (Castaway on the Moon)
감독 이해준 | 주연 정재영, 정려원 | 제작 반짝반짝영화사 | 개봉 2009.5.14
<김씨표류기> 연관검색어: 우리 집에 왜 왔니, NHK에 어서오세요!, 두더지, 택시, 머시니스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4월 이야기
<우리 집에 왜 왔니>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죽이기 힘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일 테고 말이다. 드디어 세상과 하직을 고할 때가 왔다. 목을 맬 단단한 고리를 만들어 걸고 목을 그 고리 안에 넣는다. 고리를 조인다. 위태위태하게 발을 지탱하던 물체를 스스로 내친다. 간단한 자살법 같지만 결코 쉽지 않다. 남자 김씨가 밤섬으로 표류한 직후 선택한 이 자살법이 실패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강에 뛰어들 용기는 있었지만 어쩌면 그는 아직까지 전혀 자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집에 왜 왔니>의 병희(박희순)가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고 바동거리던 중 그는 불청객 이수강(강혜정)에 의해 자신의 마지막 권리마저 박탈당한다. 그러나 죽을 권리마저 박탈당한 후 자신의 집에 감금당하는 그는 죽음 대신 삶을 얻는다. 이는 단순히 목숨의 유예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포기하고 삶을 포기했던 그가 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감금 사건으로 인해 얻은 것은 바로 새 삶이다. 김씨가 밤섬에서 희망이라는 이름의 짜장면을 갈구하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새 삶을 얻은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과 죽음, 백짓장보다 더 얇은 삶과 죽음의 경계. 남자 김씨와 병희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희망이라는 이름의 소중한 삶을 다시 얻고 소중한 사람을 만난다.
<NHK에 어서오세요!>
<두더지>
그저 평범하게 보통의 삶을 누리는 것조차 버거운 중3 스미다에게 닥치는 일들, 맞닥뜨려야 하는 일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그저 보통에 머물며 두더지처럼 조용히 살아가려는 것뿐인데도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의 삶을 조롱이라도 하듯 나타나 기분 나쁜 웃음을 짓는 환상 속의 괴물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변하는 건 없다. 아버지라는 허울을 들며 뻔뻔하게 나타나 필요할 때마다 돈을 뜯는 아버지, 아들을 버리고 남자와 달아난 어머니, 그리고 홀로 남겨진 스미다. 그는 계속해서 안으로 웅크리려 하지만 세상은 매번 그를 꺼내어 들춘다. 마침내 그는 죽기를 결심하고 동시에 자신의 죽음에 동참할 악인 또한 선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도 이해준 감독은 “눈이 짝짝이네, 시베리안 허스키 같아”라는 <두더지>의 대사를 전혀 다른 맥락으로 활용하며 후루야 미노루와 <두더지>에 대한 애정을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세상과 스스로를 격리시킨 히키코모리 여자 김씨의 입을 통해 내뱉는 이번 <두더지>의 대사는 보다 원작의 맥락과 가깝다. <김씨표류기>는 어쩌면 <두더지>의 스미다가 나아간 길, 맞게 된 결말에 대한 이해준 식의 청량한 재해석일지도 모른다. 강상준 기자(FILMON)
<택시>
<머시니스트>
잠을 이룰 수 없다. 잠에 들면 악몽은 여지없이 그를 괴롭힌다. 기계공 트레버(크리스찬 베일)은 날로 야위어 가고, 그를 걱정을 하던 주변사람들도 점점 멀어져간다. 어느 날 이반이 나타나 동료의 팔을 기계에 끼게 만드는 사고를 낸다. 트레버는 부인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의 잘못이라 하고, 이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트레버는 과연 누구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작품은 관계 맺기에 실패한 개인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비참하게 그린다. 영화 초반 트레버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기억을 잃는다. 그런데 그의 양심은 악몽을 불러오고, 스스로를 고립된 섬으로 만든다. 날로 말라 가는 트레버의 모습과 어둡고 황량한 공장의 풍경은 고독 그 자체다. 크리스찬 베일이 30kg을 감량 후 연기한 트레버의 모습에서 <다크 나이트>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의 액션 영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안효원 기자(FILMON)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김씨표류기>의 여자 김씨는 세상을 향해 방문을 걸어 잠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자물쇠를 채운 작은 방, 그 안에서 반복되는 하루하루. 그곳에 여자 김씨만의 세상이 존재한다. 그 세상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잠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벽장 속에서 잔다. 건강을 위해 매일 같은 종류, 같은 양의 음식을 먹고 어김없이 하루 1만 보를 걷는다. 컴퓨터를 켜기 전에는 꼭 자판 청소를 한다. 여자 김 씨는 아직까지 바깥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나갈 용기는 없지만 그것이 손바닥만한 세계일지언정 자신만의 세계를 관리하고 통제해나갈 의지를 갖췄다. 어쩌면 여자 김 씨는 처음부터 스스로 상처를 극복할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도 그렇다. 다리가 불편해 할머니가 끌어주는 유모차가 아니면 바깥구경을 할 수 없는 신세. 여자 김 씨와 마찬가지로 벽장에서 잠을 잔다. 그러나 조제는 분명한 자기 삶의 주인이다. 그녀는 두 팔로 마음껏 자신의 공간을 누비며 요리를 하고 책을 읽고 차를 마신다.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도 결코 기죽는 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 <김씨표류기>의 여자 김씨는 같은 히키코모리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백발 마츠코(나카타니 미키)보다 조제와 더 닮은 구석이 많다. 더 이상 유모차를 끌어줄 할머니가 없어도, 업어서 바다를 구경시켜줄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가 떠나도 조제의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조제는 자동 휠체어를 타고 시장을 봐 온다. 또 다시 조제의 부엌에서는 계란말이가 익고 생선이 구워질 것이다. 오늘도 그녀들의 세상은 여전히 건재하다.
<4월이야기>
그토록 구구절절한 사연 끝에 드디어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가 만난다. 서로를 알아보는 두 사람. 그리고 <김씨표류기>는 입을 다문다. 그 후 남자 김 씨와 여자 김 씨가 어떻게 됐는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상상에 맡겨진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서로를 위로하며 살았을지, 두 사람이 힘을 모아 남자 김 씨의 대출 이자를 갚다가 끝끝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헤어졌을지 누구도 그들의 결말을 장담할 수 없다.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도 빗속에서 발길을 멈춘다. 고등학교에서부터 짝사랑한 야마자키 선배(다나베 세이이치)를 따라 도쿄의 대학에 진학한 우즈키(마츠 다카코). 야마자키가 일하는 서점을 맴돌지만 말을 붙일 용기가 없다. 그러다 봄비 내리는 4월의 어느 날, 야마자키가 먼저 고등학교 후배 우즈키를 알아본다. 야마자키가 건넨 빨간 우산을 들고 빗속을 달려가는 우즈키. 그녀의 두 볼이 봄비 속에서 발그레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끝. 아마도 다음 날 우즈키는 서점에 우산을 돌려주러 갔을 것이고 야마자키와 다시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몄을까? 아니면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야마자키의 바람둥이 기질을 알게 된 우즈키가 사랑에 속았다며 울며불며 이별을 통보했을까?
<김씨표류기>와 <4월 이야기>의 결말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의 그것처럼 주인공들의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늘의 영광이 내일의 치욕이 되고 그것이 다시 모레의 역전 드라마가 되는 세상에서 영원을 약속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김씨표류기>와 <4월 이야기>는 순간의 희망과 설렘만으로도 이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 만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욕심을 버린 결말은 단연 두 영화의 묘미다. 장성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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