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의 어머니는 미쳤다. 아들은 덜떨어졌고 어머니는 미쳤다. 정작 제대로 된 사람 구실 못하는 쪽은 아들 도준(원빈)이지만 미치기로는 그 어머니(김혜자)가 아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다. 눈앞의 아들을 살피는 데 정신이 팔려 손가락이 잘리는 줄도 모르고, 다 큰 남자가 오줌 누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다.
자식을 향한 어미의 사랑은 원래 반쯤 미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치지 않고서야 무지렁이 시골 아낙네가 과학수사로도 찾아내지 못한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겠다고 동네를 들쑤시고 다닐 리 있겠는가. 그게 다 아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서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머니는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 그보다 더한 짓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 않는다
그래서 <친절한 금자씨>(2005) <오로라 공주>(2005) <6월의 일기>(2005) <세븐 데이즈>(2007)의 어머니들은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식을 빼앗긴 어머니들이었다. 어머니에게 자식을 빼앗기는 것보다 끔찍한 고통은 없다. 그에 비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거나 자신의 생살이 찢기는 고통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이영애)는 악질 연쇄 유괴범 백 선생(최민식) 때문에 갓 낳은 딸을 입양 보내야 했다. 그나마 자기 대신 박원모(남송우) 어린이 살해범으로 옥살이를 하라는 백 선생의 요구를 들어줬기에 딸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금자는 백 선생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며 교도소에서 13년 반을 살았다.
<오로라 공주>의 순정(엄정화)은 정신이상자 홍기범(박성빈)의 손에 여섯 살 난 딸 민아(이지수)를 잃었다. 홍기범은 길을 잃은 채 울고 있던 민아를 유괴해 성폭행한 뒤 살해, 아이의 사체를 쓰레기 매립장에 내다 버렸다. 그로부터 1년 후, 어느덧 세상은 민아의 죽음을 까마득히 잊었지만 순정은 시커먼 눈물은 결코 마르지 않았다. 그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순정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6월의 일기>에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있다. 윤희(김윤진)의 눈앞에서 아들 진모(김진호)는 달리는 차에 뛰어들었다. 학교 아이들로부터 지독한 따돌림을 받으며 괴로워했던 진모의 일기장을 부여잡고 윤희는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진모가 일기장에 써놓은 대로 6월이 왔다. 일기장에 적힌 날짜에 맞춰 윤희도 모든 준비를 마쳤다.
<세븐 데이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어머니는 지연(김윤진)이 아니다. 유괴당한 딸을 되찾기 위해 발 벗고 뛰는 지연의 뒤에서 슬픔을 삼키고 있는 또 한 명의 어머니, 숙희(김미숙)가 있다. 그의 딸 혜진(윤빈)은 스물 세 살의 꽃 같은 나이에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미사리 습지에서 발견된 시체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자돼 있었다. 딸을 죽인 ‘천하의 죽일 놈’을 가려내는 재판이 곧 끝난다. 숙희는 원고석에 앉아 있는 정철진(최명수)의 얼굴을 노려보며 하루 빨리 재판이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죽음은 죽음으로 갚는다
이 어머니들에게 이 나라의 경찰이, 이 나라의 사법부가 당신에게서 자식을 빼앗아간 사람을 찾아 그 죄에 걸맞은 벌을 내릴 것이니 그만 화를 삭이라고 말해보라. 어머니들은 아마도 코웃음을 칠 것이다. 이들의 가슴에는 이미 경찰과 사법권에 대한 불신이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경찰과 검찰은 자식을 빼앗아간 철천지원수를 찾는 데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았고 설사 범인을 잡았다 해도 그를 처벌하는 데 엄격하지 않았다. 사회 전체가 이들의 애끓는 슬픔을 나 몰라라 했다.
더구나 그들의 자식을 해한 몹쓸 인간들은 버젓이 살아서 태평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있다. 이 사실이 안 그래도 미칠 것 같은 어머니들을 더욱 더 미치게 한다. 미친 어머니들은 스스로 자식의 복수를 감행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면 그 자신의 눈알을 뺄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이빨을 부러뜨렸다면 그의 이도 부러뜨릴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뼈를 부러뜨렸다면 그의 뼈도 부러뜨릴 것이다.” 이제 그들은 그 옛날 함무라비 법전에 쓰인 탈리오의 원칙(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가해자에게 그대로 당하게 하는 것)에 의해 움직인다. 미친 어머니들을 위한 함무라비 법전에는 이런 법규가 적혀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어떤 사람이 당신 자식의 눈을 멀게 했다면 그 놈의 눈알을 뺄 것이다. 그가 당신 자식의 이빨을 부러뜨렸다면 그 놈의 이도 부러뜨릴 것이다. 그가 당신 자식의 뼈를 부러뜨렸다면 그 놈의 뼈도 부러뜨릴 것이다. 그가 당신 자식을 죽였다면 그 놈을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는 13년 반의 수감 생활 동안 세운 치밀한 계획을 통해 백 선생에게 접근, 그를 납치한다. 그리고 그의 손에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불러 모은다. 잊을 수 없는 분노를 되새김질한 부모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백 선생을 의자에 묶은 채 차례로 분풀이를 한다. 피의 복수 앞에 부와 가난, 유식과 무식의 차이 따윈 없다. 백 선생 앞에 선 부모들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오로라 공주>의 순정과 <6월의 일기>의 윤희는 혼자 일을 꾸민다. 자식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있어 간접적이지만 결정적인 잘못을 했던 사람들을 순서대로 응징한다. 끝내 순정은 경찰에 붙잡혀 6개월의 치료감호와 함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국립정신치료감호소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순정은 딸 민아를 죽인 범인인 홍기범과 마주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살인을 끝마치고 자살한다. <6월의 일기>의 윤희 역시 마찬가지다. 아들 진모의 상상 일기를 따라 진모를 괴롭힌 학교 아이들을 살해한 윤희는 인질극을 가장해 경찰의 총 앞에 자신의 몸뚱이를 내민다. 그는 계획된 자살로 아들의 고통을 방치했던 자신의 죗값을 치른다.
<세븐 데이즈>의 숙희는 딸을 죽인 범인을 스스로 응징하기 위해 도리어 그를 무죄방면 시킨다. 영락없이 사형수가 될 처지에서 하루아침에 무죄로 풀려나 실실거리고 있는 장철진을 숙희가 다시 붙잡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런 방법으로 죽이기 위해서다. 장철진은 숙희의 계획대로 불타 죽고 숙희는 경찰에 끌려간다.
아버지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어머니들의 반대편에는 물론 아버지들도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마더>를 만든 봉준호 감독의 2006년 작 <괴물>의 강두(송강호)도 앞에서 말한 어머니들과 비슷한 처지에 처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현서(고아성)가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끌려갔다. 그러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현서에게서 희미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경찰은 현서가 살아 있다는 강두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이상자 취급을 하고 병원에 입원시킨다. 결국 여기서 탈출한 강두는 가족들과 함께 현서를 찾아 한강을 누빈다.
그러나 결정적인 점에서 강두는 2000년대 한국영화의 미친 어머니들과 다르다. 강두는 현서의 죽음 앞에서 복수를 결심하지 않는다. 아비가 자식을 되찾는 일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방해한 사회와 사람들을 스스로 응징하러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현서에게 쏟았던 사랑으로 다른 아이를 돌봄으로써 아버지의 역할을 계속해 나간다. <친절한 금자씨>부터 <마더>에 이르는 한국영화의 어머니들에 비하자면 강두는 미치지 않았다.
<마더>, ‘미친 어머니’의 정수, 그 괴물 같은 모습을 그리다
그런 의미에서 <마더>는 2000년대 한국영화 속 ‘미친 어머니’의 모습을 완성했다고 할 만한 영화다. 특히 <마더>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 한국의 어머니, 그 괴물 같은 모습의 정수를 그리고 있다.
어머니는 가난하고 무식하다. 사회적으로 볼 때 결코 ‘힘 있는 자’가 아니다. 그런 그가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용감하게 덤벼든다. 아들 도준(원빈)이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아정(문희라)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사실은 우리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라고 뻔뻔스레 소리를 치다 “미친 년” 소리를 듣고 뺨을 얻어맞아도 아랑곳 않는다. 장례식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바로 변호사를 찾아갈 정도로 용의주도하다. 자식의 위기 앞에서 못난 어머니는 순식간에 만능 재주꾼으로 변신한다.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 <오로라 공주>의 순정, <6월의 일기>의 윤희, <세븐 데이즈>의 숙희 역시 <마더>의 어머니 못지않은 놀라운 변신을 한다. ‘까다롭지 않았던’ 소녀 금자가 그토록 냉정하게 변한 것은, 착하기만 했던 순정, 내성적인 윤희, 고상한 숙희가 끔찍한 살인마가 된 것은 오직 하나, 그들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어머니들의 광기 아래에는 근본적으로 자식이 잘못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더>는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편 없이 아들을 키우기가 어려웠던 어머니는 도준이 다섯 살 때 함께 농약을 마시고 죽을 결심을 한다. 그러나 도준에게 농약을 탄 음료를 먹이고 난 직후 어머니는 정신을 차린다. 다행히 도준은 살았지만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죄책감은 평생 어머니의 가슴에 남는다—도준의 지능 발달에 문제가 생긴 것이 그 때문인지에 관해 영화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더군다나 도준에게 바보라고 “무시하는 놈은 작살낸다”고 가르친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 자신이다.
<친절한 금자씨>, <6월의 일기>, <세븐 데이즈>에서도 이와 비슷한 어머니의 죄책감을 엿볼 수 있다.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는 자신이 애초에 백 선생이 원모를 유괴하는 것을 돕지 않았다면 딸을 입양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금자는 자신과 백 선생 때문에 자식을 잃은 원모 부모의 심정을 십분 헤아려 그들 앞에서 손가락을 자르며 속죄한다. 그는 누군가의 자식을 잃게 한 자신의 죄 때문에 자신의 자식을 잃은 죄인이자 피해자다. 금자는 다시 만난 딸 제니(권예영)에게 그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엄마의 죄는 너무 크고 너무 깊어서 너처럼 사랑스러운 딸을 가질 자격이 없거든.”
<6월의 일기>의 윤희는 사라진 남편이 남긴 빚을 갚는데 허덕여 진모의 아픔을 돌보지 못했다. “진모야, 엄마가 부탁할게, 부탁 하나만 할게. 엄마 숨 좀 쉬게, 엄마도 좀 살게 너 어디 좀 가라. 잠시라도 좋으니까 어디 좀 가 있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진모에게 윤희는 홧김에 모진 소리를 한다. 그 말을 듣고 진모는 달리는 차에 몸을 던진다.
<세븐 데이즈>의 숙희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죽은 딸 혜진이 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번 꿈을 꾸고 나면 며칠씩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얼굴이 난자된 딸의 얼굴을 꿈에서라도 만나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어머니는 더욱 더 무섭게 미쳐간다.
어미가 자식을 지키고 위하는 것은 인간 이전의 동물적 본능, 피의 욕망이다. 한국 사회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그 피의 욕망이 강렬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사회다. 한국 부모들은 빚을 내서라도 자식을 공부 시키고 자식의 나이가 몇이건 상관없이 자식 일에 사사건건 참견한다. 그 끈끈한 피의 논리는 정겨운 것임에 틀림없지만 반대로 그만큼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2000년대 한국영화 속 미친 어머니들의 애절한 사랑과 오싹한 광기는 피로 찍어낸 한 점의 데칼코마니 같다. 그것은 아름다우면서도 추하고 슬프면서도 끔찍하다. 그 날 선 경계 위에 <마더>가, 한국의 어머니들이 있다. 장성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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