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와 여고생의 아름다운 우정일 거라 생각했다. 가련한 존재들의 고단한 현재를 비추며 희망찬 메시지를 던지는 휴먼 드라마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영화, 당혹스러울 정도로 도발적이고 거침없이 노골적이다. 시작과 함께 화재 이후 재건중인 숭례문을 슬쩍 비추더니 MB정권을 향해 연달아 조소를 날리는 영화는 참으로 직설적인 풍자극이며, 이주노동자와 여고생의 관계는 순수와 타락 사이에서 위태롭게 삐걱댄다. 신동일 감독은 29살의 방글라데시 청년 카림(마붑 알엄)과 열일곱 소녀 민서(백진희)의 인종과 나이를 초월한 교감과 저돌적인 소통 속에서 그들이 발붙이고 사는 이 땅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편견과 부조리를 매섭게 꼬집는다.
카림은 밀린 월급 안 주고 내뺀 사장 때문에 몹시 불행한 상태다. 아내는 빨리 돈 보내라고 난리인데 법도 인권단체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사장 집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무작정 찾아 헤매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여름방학을 맞은 여고생 민서는 불만이 많다. 친구들은 원어민 영어강사에게 회화 수업 받는다고 들떠있는데 백수 연하남과 연애하느라 정신없는 엄마는 딸이 뭘 원하는 지 신경도 안 쓴다. 화창한 날씨에 우울한 두 청춘이 꺼림칙하게 만난다. 카림은 빨리 돈 모아서 떠나고만 싶은 지긋지긋한 한국에서 뻔뻔하게 되바라진 소녀와 맞닥뜨리고, 민서는 버스 옆자리에 앉기조차 꺼려하던 동남아인과 말문을 트게 된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두 사람, 친해지고 보니 뭔가 잘 맞는 것도 같다.
우연한 만남과 소통, 그리고 우정. 여기까지가 이주노동자와 여고생을 놓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단계라면, <반두비>는 카림과 민서의 관계를 정서적인 교감 이상으로 끌어 올린다. 휴대폰 문자메시지까지 보낼 정도로 한국어가 능통한데다 꽤 ‘잘생긴 방글라데시인’인 카림은 고단한 이주노동자이기 이전에 매력적인 한 남자로 묘사된다. 영어학원비를 벌기 위해 선정적인 아르바이트를 거리낌 없이 하는 민서는 이 사회가 17세 여고생에게 부여한 상투적인 순진함과 도덕성을 일찍이 버린 인물이다.
둘은 피부색과 먹을 것의 다름을 받아들이며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나아가 원초적 본능을 지닌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마주본다. 엄마의 애인을 싫어하는 민서에게 카림은 가족의 소중함을 설파하며 “마음을 열라”고 타이르고, 민서는 아무런 동요 없이 아르바이트 하듯 카림을 육체적으로 위로하려들더니 급기야 자신이 결혼해 줄 테니 한국에서 마음 놓고 살자고 내뱉는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으로 보이진 않는다. 결코 순수하다고 할 수 없는 민서의 행동들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에 당차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희생양으로 비치기도 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 이 작은 소녀가 세상을 향해 보내는 무심함과 치기어린 행동은 그 어떤 비극보다 슬프고 그 어떤 비판보다 신랄하다.
청춘물의 외양을 한 <반두비>는 영화의 중심에 선 민서의 귀엽고 상큼한 외모만큼이나 (또 적당히 설익은 연기만큼이나) 뽀송뽀송하지만, ‘MB 영어학원’에서 “대통령의 별명이 왜 쥐냐?”고 진지하게 묻는 외국인 강사, 저속한 스포츠마사지 알바를 하던 민서가 손님으로 담임선생을 맞닥뜨리는 상황 등으로 날카로운 유머를 선사하며 잔인할 정도로 저돌적으로 현실을 담아낸다.
월급 떼먹고도 포부 당당한 나쁜 사장, 동남아 이주노동자를 향한 불편하고 억압적인 시선, 그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며 불법체류를 하면서까지 한국에서 돈 벌고 싶은 방글라데시 노동자, 영어학원비 때문에 유흥가로 향하는 여고생, 한국 여자애들은 다루기 쉬워서 좋다고 말하는 백인 영어강사, 혈기왕성한 일꾼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드는 청년실업 문제 등 곳곳에서 추악한 현실이 에두름 없이 고개를 드민다. <반두비>는 이 시대, 이 사회에 경쾌하게 비수를 꽂는 당돌한 영화다. 정미래 기자(FILMON)
연관기사
[기획]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 - 독립영화 한류의 중심이 되어라!
[기획] 김일권 프로듀서 -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것이여!
'REVIEW 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빠의 화장실> - 사람 냄새 가득한 따뜻한 화장실 (4) | 2009/06/28 |
|---|---|
| <요시노 이발관> - 맵지도 쓰지도 않은 담백한 혁명 (2) | 2009/06/25 |
| <반두비> - 이보다 당돌할 수 없다 (2) | 2009/06/24 |
| <블룸 형제 사기단> - 할리우드 사기영화의 새로운 스타일 실험 (2) | 2009/06/22 |
| <서브웨이 하이재킹: 펠햄 123> - 흠 있는 자들의 스릴러 (2) | 2009/06/17 |
|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 나를 비우는 96분의 시간 (0) | 2009/06/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