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가 방바닥에 쩍쩍 달라붙던 작년 무더위는 끔찍했다. 올해 여름에도 뙤약볕 아래 누렁이 혓바닥처럼 늘어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지난 6월 말, 큰맘 먹고 에어컨을 샀다. 에어컨을 들여놓고 나니 요즘은 이놈의 날씨가 왜 이렇게 오락가락 비를 뿌리는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어쩌다 반짝 여름 해가 나면 냉큼 창문을 닫고 보란 듯이 에어컨을 튼다. 에어컨 바람 아래 앉아 수박이라도 한 입 베어 물면 하늘 아래 부러울 게 없다. 아니다. 딱 하나 빠진 게 있다. 이럴 때 시원한 음악이 빠지면 섭섭하다. 파도 소리 대신 ‘하찌와 TJ’의 2집 앨범 <별총총>을 튼다. “아직 손을 놓지 말아줘요~ 별들이 총총 빛나잖아요~(‘별총총’)” 말해 뭐 하나! 나는 지금 천국의 바닷가,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파라솔 아래 있다.
하찌와 TJ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천국의 바닷가에 간 것이 3년 전인 2006년(1집 음반 <행복>).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풍기는 시장 골목에서 ‘장사하자’고 소리치는 두 통기타 장수에게 잠깐 정신이 팔렸던 것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 ‘남쪽 끝섬’에 다다라 있었다.
스르륵 시원한 파도를 부르는 하찌와 TJ의 마법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제주도 바닷가에서 민요 한 자락을 흥얼거리던 찰나(‘제주도 타령’), 부드러운 파도에 쓸려 홍대 정문 앞부터(‘별총총’) 이대 앞까지(‘은행나무’) 금세 서울을 한 바퀴 돈다. 나긋나긋한 물살은 어느새 별이 총총 빗나는 은하수 강둑으로 이 몸을 데려다 놓는다(‘별총총’ ‘휘릿휘릿’).
이렇게 말하니 무슨 마법의 유랑 악단이라도 되는 듯싶지만 사실 하찌와 TJ는 산들바람처럼 맑고 시원한 노래를 부르는 포크 듀오다.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찌와 부산 청년 TJ가 그 주인공. 기타부터 우쿨렐레, 베이스, 큰북, 심벌즈, 하이햇, 하모니카까지 웬만한 악기는 직접 다 연주하느라 두 손 두 발이 바쁘지만 노래는 결코 서두는 법이 없다. 하찌와 TJ의 목소리는 언제나 느긋하고 유쾌하다.
백발의 하찌와 곱슬머리 청년 TJ는 스물다섯 살 차이. 올해 하찌의 나이가 쉰여섯, TJ의 나이가 서른하나다. 그 때문일까. 하찌와 TJ의 음악은 젊음의 유행에 휩쓸리는 법이 없다. 대신 누가 들어도 즐겁고 편안한 음악, 중년의 여유와 청춘의 설렘이 잘 버무려져 있는 음악을 한다.
알찬 연주를 들려주는 하찌는 원래 일본에서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몇 년 전 꽹과리를 배우러 한국에 온 하찌가 꽹과리보다 더 ‘맑고 시원한’ TJ의 노랫소리에 반한 데서 듀오의 역사가 시작됐다. 2006년 4월 발표한 첫 곡 ‘장사하자’의 플래시 뮤직비디오가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데 이어 그해 5월, 1집 음반 <행복>을 발표했다.
쿵작쿵작 흥겨운 리듬과 구성진 노랫가락, 중간에 끼어드는 트로트풍 편곡, ‘장사해서 먹고 살자’는 가사가 재미있는 타이틀곡 ‘장사하자’를 필두로 하찌와 TJ는 이 음반에서 포크 음악의 편안한 멜로디를 따라 밤바다의 낭만적인 풍경을 노래한다. ‘남쪽 끝섬’ ‘보라색 밤과 작은별’ ‘백사장’이 바로 그 노래들. ‘남쪽 끝섬’은 지난 해 <일요일 일요일 밤에>(MBC)의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알렉스가 “뽀뽀하고 싶소”란 구절을 흥얼거린 바람에 다시금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뽀뽀하고 싶소’란 노랫말만 들으면 꽤나 간지러울 것 같지만 노래 전체를 들으면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해 통통 칙칙 댕댕 아기자기한 연주에 담백한 보컬이 더해져 낭만적인 분위기가 뭉근하게 피어나는 곡이다. 이외에도 전체적으로 한여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줄 노래들이 가득하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의 쓸쓸함이나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집으로 가는 길’ ‘안녕’ ‘축제의 밤’ 역시 한숨을 푹푹 내쉬는 대신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발장단을 맞춘다.
2집 <별총총> 역시 1집의 정서를 그대로 이어간다. ‘별총총’은 ‘남쪽 끝섬’의 뒤를 잇는 낭만가(浪漫歌). ‘남쪽 끝섬’보다 한결 고즈넉하고 부드러워진 것이 특징이다. 그와 함께 ‘휘릿휘릿’, ‘은행나무’, ‘아지랑이’, ‘살랑살랑’처럼 일상의 평화로움을 더듬는 노래들이 <별총총>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장사하자’가 1집의 재미를 책임졌다면 2집에서는 ‘꼭디바야’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꼭디바야’는 하찌와 TJ의 노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부산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곡이다. “꼭 디바야 뜨거븐걸 아나” “우야둥둥 그녈 봐 윙클 쉐리 날리봐”와 같은 노랫말이 흥미롭다. 민요를 새롭게 부른 ‘제주도타령’도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래. 한편 ‘진달래꽃’ ‘천년쯤지나서’에서는 전에 비해 한층 담담해진 멜로디와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다. 차분하고 담담한 분위기도 제법 잘 어울린다.
공연에 가서 듣는 하찌와 TJ의 노래는 또 색다르다. 집에서 음반으로 들으면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공연장에서는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TJ의 목소리는 직접 듣는 게 더 상쾌하고 시원하다. 하찌가 유창한 부산 사투리로 한 번씩 농담을 던지며 관객을 킥킥거리게 만들면 TJ가 엉덩이를 흔들며 기어코 관객을 일으켜 세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껴안고 있다가 냉방병에 걸리려는 찰나, 하찌와 TJ의 공연장을 찾아 한여름의 열기를 만끽하는 것도 좋겠다. 장성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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