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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샤머니즘. 이 기묘한 조합을 광신과 신들림의 공포로 결합한 <불신지옥>은 행방불명된 동생을 추적하는 탄탄한 미스터리 위에 독특한 장치들을 쌓아올린 인상적인 공포영화다. 추리물의 형식을 빌린 빠른 전개와 흡입력, 그리고 기존 공포영화의 클리셰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기획된 면밀한 아이디어들은 영화의 색다른 소재 그 이상의 성과를 충분히 대변할 만하다. 8월 12일 개봉 대기중인 올여름 두 번째 한국공포영화 <불신지옥>의 신인감독 이용주를 만나 이 신선한 호러를 뒷받침한 해법과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강상준 기자(FILMON) 



공개된 약력만 보면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바로 다음에 ‘2003년 <살인의 추억> 연출부’만 기재되어 있어 2003년부터 영화를 시작한 듯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올해 나이 마흔이니 34살에 연출부 생활을 시작한 게 되는데. <살인의 추억> 작업 이전에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4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해 두 편의 단편을 만들었는데 첫 단편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영화를 해보면 어떨까’ 정도의 생각이었다. 영화에 관심은 있었지만 차마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할 용기는 없었기에 직장생활과 병행했던 거지. 이런 표현이 적절하진 않겠지만 ‘제도권’ 안에 있으면서 월급 받고 있었으니 영화의 길을 걷고자 하는 건 상대적으로 취직하는 것도 아니고 꽤나 갈등하게 만들 만했다. 그러다 주위에서 그럼 일단 영화를 한번 찍어보라는 조언을 해주셔서 정말 찍어봤다. 찍어보니 이건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서른 살에 건축을 그만뒀는데, 부모님한테 딱 2년만 해보겠노라고 선언한 후 지금까지 10년째 해오고 있다. <살인의 추억>은 2002년 6월부터 출근하기 시작했으니 정확히 말하면 33살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살인의 추억> 이전에 작업한 단편 두 작품은 어떤 내용의 영화였나?
첫 단편은 한겨레문화센터에 다니면서 찍었다.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단편을 찍을 수 있는 기회는 이렇게 밖에 안 되더라. 이때 찍은 건 지금 줄거리조차 기억 안 난다. 이 작업을 마치고 영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입시요강을 보니 포트폴리오로 단편작이 필요한 거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찍은 첫 단편작으로는 승산이 없어 보였고 또 이참에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 시나리오를 영화진흥위원회에 제출했는데 당선되어 제작지원을 받게 됐다. 덕분에 제작지원금과 내 퇴직금을 몰아서 단편 하나를 또 완성할 수 있었다. 이 두 번째 단편은 되게 따뜻한 이야기였는데.(웃음) 꼬마애가 버스에 스케치북을 두고 내린 후 그 스케치북을 찾으러 종점까지 가는 내용이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완성하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스탭을 구성하고 촬영에 임하면서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걸 몸소 체험했다. 그러고 나서 연출부를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때마침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를 보게 된 거다. 그리고 이 사람 밑에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봉감독님이야 당시 <지리멸렬>도 있었고 워낙 유명했으니까. 그래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운 좋게 스틱 (기어) 운전이 가능하단 이유로 연출부에 뽑혔다.(웃음)

아무래도 신인감독이었던 까닭에 봉준호 감독의 ‘직계’ 내지는 ‘적자’임을 강조하는 약력이었던 것 같다. 근데 실제로도 영화에 봉준호 감독의 냄새가 곳곳에 배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흥미로웠다.
(‘직계’ ‘적자’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웃음) 그게 뭘까? 나도 궁금하다. 봉감독님의 냄새가 난다면 그건 엄청난 칭찬인데.

가령 <플란다스의 개>에서 본 듯한 복도식 아파트를 완전히 정반대되는 질감으로 아파트의 거의 모든 장소를 훑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마치 그것은 극단적으로 맑은 날과 극단적으로 흐린 날 정도의 차이로도 느껴지기도 했고. 다른 관객 역시 이런 봉준호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영화감독 봉준호보다는 봉준호라는 사람을 좋아한다. 2년 동안 같이 하면서 감화를 많이 받았다.(웃음) 정말 괜찮은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근데 <살인의 추억> 끝나고 정말로 우뚝 섰다. 그 전만 하더라도 그 정도로 명성이 드높지는 않았는데. <플란다스의 개>를 찍은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었을 뿐이니까. 올해 <마더>가 개봉해서 <살인의 추억> 연출부팀이랑 같이 봤는데 그때 봉준호 제2기의 서막을 올리는 작품인 것 같다고 얘기한 기억이 난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주제의식이 굉장히 뛰어나고 영화를 정말 꼼꼼하게 찍는다. <박쥐>를 선보인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보면 굉장히 스타일리시하지 않나. 그야말로 개인의 취향이 팍팍 묻어나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봉감독님은 균형을 잘 잡는 것 같다. 영화를 단단하게 만든다. 때문에 봉감독님스럽다 여겨주신다면 기본기에 충실하려고 노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칭찬으로 들린다. 실제로 <불신지옥> 역시 꼼꼼하게 찍는 것이 목표였다.  

실제로 어떤 부분을 배웠고 어떤 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나?
<살인의 추억>은 프리 단계만 1년 반을 거친 작품이다. 당시 나한테는 유일무이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는 것, 그리고 찍을 때의 자세나 태도 등 전반적인 모든 것을 당연히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비교대상이 없었으니까. 그러다 <불신지옥>을 연출하면서 주위의 스탭들이나 회사를 통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를 들으며 그제야 체감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원래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굉장히 훌륭한 레퍼런스를 물려받은 거다.


공포영화, 연출력의 밑을 드러내는 작업

<불신지옥>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불신지옥>은 언제 어떻게 처음 구상한 것인가?
2007년 초에 처음 아이템을 잡았다. 애초에 관심 있었던 건 영매였고 여기서부터 생각을 전개시키다보니 자연스럽게 종교가 연결됐고 또 이런 믿음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어떤 이야기가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의 질감 정도만 막연히 구상하던 차 ‘과도한 믿음’이란 게 자연히 화두가 됐다. 과도한 믿음, 광신. 생각해보면 믿음 자체는 과도한 게 정상 아닌가 싶었던 거다. 적당한 믿음이란 게 가능한가. 이건 굉장히 역설적인 상태가 아닐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의 믿음이란 너무나 기복(祈福)적인 성격이 강하다. 믿어서 믿는다기보다는 믿어야 될 것 같으니까, 믿어야 나에게 좋을 것 같으니까 믿는 기복적인 측면. 다시 말해 너무 해달라는 게 많다.(웃음) 그게 충족되어야 비로소 믿음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우리 어머니들은 빌어왔지 않나. 그러나 이것이 종교의 속성이긴 하지만 본질은 아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우리나라 종교 행태에 대한 비판보다는 개인이 우리 사회에서 믿음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이나 그것을 확대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기복적인 측면을 받아들이는 것에 집중했다. 이건 너무 자본주의스럽지 않나 하면서.(웃음) 이런 역설적인 측면이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시나리오 완성 후 <불신지옥> 제작 착수가 결정되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하다.
그건 내가 소상히 기억한다. 2007년 초, 그동안 했던 영화들이 최종적으로 모두 엎어져서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니면 영화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약간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을 때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었는데 다시 건축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럼 마지막으로 한번 써보자 이거 안 되면 정말로 그만두자 했었다. 그리고 이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걸 써야지 하다 보니 역시 이 이야기는 공포로 푸는 게 제일 재밌겠다 싶었고 4월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초고는 7월경에 완성했고 이걸 바로 봉준호 감독에게 보여드렸다. <마더> 때문에 한창 바쁠 때 시간을 내주셨다.(웃음) 제작사를 고민하던 차에 감독님이 물어보시더라, 어디 가고 싶냐고. 일단 기존에 준비하다 엎어진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제작사는 모조리 제외하고.(웃음) 정승혜 대표(영화사 아침)한테 관심이 있다고 했더니 ‘아, 승혜 누나’하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전화를 하시더라. 그렇게 다리를 놔주셔서 정대표님 만나 뵙고 시나리오를 드렸고 2007년 8월, 약3주 후에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합시다, 하겠다가 돼서 8월부터 제작사에서 각색 작업이 시작됐다. 2고, 3고 정도가 나왔을 때가 9,10월경이었다. 11월에는 투자계약이 이뤄졌고 이때부터 프리 작업을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는 공포로 푸는 게 재밌겠다고 말했는데, 처음부터 꼭 공포영화로 데뷔해야겠다고 결정했던 건 아닌 듯하다.
여기엔 현실적인 고민이 분명 있었다. 테마 자체가 영매, 욕망 이런 것들이니까 슬프거나 웃기는 것보다는 무섭게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 싶었다. 또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신인감독이 공포영화로 데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시장성 때문이다. 공포영화는 상대적으로 캐스팅을 타지 않는다. 전에 준비하던 작품은 멜로물이었는데 캐스팅이 되지 않아 무진 애먹었다. 멜로는 주연급이 어느 정도 높은 인지도를 가진 배우여야 비로소 투자를 받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이런 배우들은 신인감독과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검증이 안 됐으니까. 힘에 부치는 싸움을 한다고 느꼈다. 그런 면에서 호러물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편하다. 저예산으로도 가능하다. 이런 측면을 고려해 시나리오를 쓰고자 했고 실제로도 공간적인 제약을 고려하는 등 전략적인 판단을 많이 가미했다. 5년간 입봉을 준비하면서 더 이상은 순진하지 않았던 거지.(웃음) 처음에는 공포영화란 장르 자체가 워낙 스타일리시한 면이 많고 또 장르성도 강하기 때문에 나중에 필모그래피가 충분히 쌓이면 멋진 공포영화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공포라는 장르는 감독의 연출력의 밑바닥까지 다 보여줘야 하는 장르라. 가령 코미디 같은 경우는 이런 연출적인 측면보다는 좋은 시나리오만으로도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 하지만 공포영화는 상대적으로 영화에 대한 많은 이해를 바탕에 둬야 하기 때문에 거장들의 마스터피스로 적합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 때문에 부담감이 상당히 컸다. 내 딴엔 무서우라고 만들었는데 코웃음 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상당했다. 지금도 궁금하다. 긴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장르 선호도는 어떤가?
특정 장르를 선호하는 건 별로 없고 즐겨보지 않는 장르는 있다. 에로에는 관심이 없다. 부조리를 육체로 풀어내는 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특정 장르보다는 좋은 이야기면 다 좋아한다. 영화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7년간 쓰다 보니 이야기를 잘 짜는 것에 대한 쾌감, 완성도 높은 이야기, 이야기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해 충분한 숙성기간을 거친 것 같다. 실험영화 쪽은 관심이 없고 시나리오를 굉장히 중시하는 편이며 좋은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온다고 믿는다. 좋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탄탄하게 만들어진 영화는 장르와 상관없이 즐긴다.  


사다코를 넘어선 낯선 일상성

시나리오 작업시 무속인이나 기독교 부분을 구체화하기 위해 관련인물을 따로 취재하기도 했나?
전혀. 이건 어차피 극단의 이야기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한 것들, 주변의 교인과 점집 다니는 사람들을 통해 내재된 경험들이 바탕이 됐다. 극단으로 가면 보통 그들이 사이비라고 표현하는 것엔 그들을 사이비로 규정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형식이나 기준이 깨지는 지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사이비고 선무당이기도 한 건데 그래서 더더욱 공부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이미 깨져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고정관념을 갖고 접근하면 다치지 않을까 의식했다. 상상하는 것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속신앙과 기독교 모두 종교의 변질된 속성을 활용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것은 해당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외부자적 관점이기도 하다. 영화 역시 이런 일반화된 시각을 따른다. 물론 장르영화, 공포영화라는 측면 때문에 특정종교를 향한 외부자의 시선을 일반화하는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는 광신도인 희진모(김보연)나 무당인 만수보살(문희경)에게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를테면 그들의 대사만 봐도 외부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국한되어 있으며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어떤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나는 넘어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촬영이나 미술, 시나리오에서 가장 집착했던 건 일상성이었다. 멀쩡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친한 친구, 스스럼없이 지내는 직장동료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 이야기를 꺼낼 때 돌변하는 것을 볼 때 난 정말 무섭다. 정말로 익숙한 환경, 익숙한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한 부분, 이를테면 믿음이나 이념적인 측면을 두고 둔갑하는 걸 보면 그 사람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일이겠지만 나한테는 상식을 뛰어넘는 공포감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게 <불신지옥>의 주된 질감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공간도 일상적인 아파트, 인물들도 이웃사람들이나 엄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건가?
의식적으로 의도적이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가령 등장인물이 목사가 아닌 이상 전문적인 신학 용어를 쓸 필요는 없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무형문화재 지정 무당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일 필요는 없다. 이는 협박의 강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희진모가 희진(남상미)에게 하는 이야기는 ‘너 교회 안 다니면 지옥 간다’라는 것인데 이건 우리가 일상 속에서도 아주 쉽게 들을 수 있는 거잖나. 이런 일상적인 것이 나중에 섬뜩하게 보이길 원했다. 엄마가 뜬금없이 딸을 결박한다던가 하는 것들은 일상성을 깨는 거다. 그저 ‘맞아, 저런 사람들이 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빚어낸 참극에 주목했다. 

이 이야기는 정상적인 교회, 정상적인 무속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사이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강조하면서 불필요한 외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인상을 받았다.
두 가지다. 하나는, 나는 사이비라고 믿는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비슷하지만 다른 거다. 이 사람은 이렇기 때문에 두둔하고 또 이 사람은 이렇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것은 그저 정해주는 것뿐이다. 그 기준에 따르자면 이건 사이비다. 여기에 이견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또 하나는 사이비를 보는 시각에 대한 건데, 굳게 믿는 이 사람은 다를 뿐이지 틀리다고 그 누가 확언할 수 있을까. 사이비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와는 달리 사회적으로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채 통용되고 있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우리가 만드는 거다. 같은 하느님을 믿고 구약을 공유하지만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 입장에서 개신교는 사이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무속신앙의 경우는 이런 면에서 더 억울하겠지.(웃음)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100년의 터울 동안 종교는 국민이라는 집합의 가장 근간이 되는 이데올로기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빨리 견고해졌다. 전쟁을 치룬 민족의 습성인지, 그래서 기복적인 측면이 더 강력하게 다가온 것인지, 왜 박정희 시대 때는 무속을 미신이라고 터부시했는지, 이건 미국 때문이었는지……. 정치적 함의가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시각도 분명히 있지만 우리나라 개신교, 우리나라 무속신앙 이런 거시적 관점에 대한 이야기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그 안에 존재하는 어떤 개인. 대표성을 가질 수도 있는 어떤 개인. 그리고 더 나아가면 이렇게 될지도 모르는 것. 이런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에 관심이 있었다.


탄탄한 미스터리, 탄탄한 공간

<불신지옥>은 최근 한국공포영화 중 가장 미스터리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그만큼 내러티브에 공을 많이 들인 영화다. 또한 시각적인 측면에서도 매 장면마다 색다른 아이디어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점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이야기와 시각적인 장치. 어떤 함수관계 안에서 고민을 했나?
시나리오를 쓰면서 일단 이야기 자체가 성립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기에 미스터리 형식을 취해야겠다 생각했고, 또 장르성을 대표할 수 있는 신(scene)들을 고민하면서 조금은 낯설게 보였으면 했다. 낯선 귀신, 낯선 장치들. 이럴 줄 알았지만 사실은 이랬어,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관객을 배신하고 또 충족시켜주는.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사다코는 안 돼, 반전에 대한 강박 가지면 안 돼, 라는 두 가지는 반드시 안고 갔다. 이야기 전개 역시 궁금증을 던지고 서너 신 후에 밝히면서 또 다른 궁금증을 던지는 식으로 맥락을 잡았고. 개별 신 구성 역시 조금은 달라야 하지만 그게 너무 심하면 낯설어지고 소통이 되지 않을 테니 새로운 느낌으로 재밌게 다가갈 수 있는 선이 어디인지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각색 작업은 이것을 다잡는 과정이었다.
 
장소 헌팅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영화의 절반 이상은 복도식 아파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아파트의 지하실부터 옥상까지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는 공간이 발하는 느낌과 분위기를 최대한 이끌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장소 선정시 기준이 있었다. 시나리오 지문에도 쓰여 있는데 ‘건설사를 알 수 없는 회색의 허름한 아파트’였다. 이제는 서울이나 경기도 근교만 하더라도 브랜드화된 아파트들이 대부분이다. 건축을 해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아파트 평면 도면이라는 건 과학이다. 아파트가 처음 지어지기 시작한 이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현재의 평면도는 이제 큰 틀에서는 바꿀 게 없을 정도로 최적화된 상태다. 근데 지방에 가보면 가끔 중소 건설사에서 지은 이형적인 아파트를 볼 수 있다. 대단지가 되어버리면 당연히 그런 최적화된 평면도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는데 규모가 작은 한동짜리 아파트를 지을 때는 조금 달라진다. 익숙하지만 약간 다른 것이 영화의 컨셉이었고 실제로 무대가 된 아파트 역시 예를 들어 보통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될 위치가 아닌 곳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이런 면이 재밌었다. 분명 보통 아파트의 익숙한 복도인데 왜 엘리베이터가 거기 있지 싶은 낯섦. 이게 이 영화의 질감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아파트이기 때문에 집의 구조는 동일하나 주거인의 성격에 따라 각각 판이하게 구성된 내부 공간 역시 흥미롭고도 효과적으로 다가온다. 장소 세공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세트는 두 개 지었다. 하나는 엄마와 함께 사는 희진과 소진(심은경) 자매의 집, 또 하나는 수경(장영남)의 집이다. 소진의 집 같은 경우는 정상적인 집을 두고 부분부분 지우는 작업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TV가 있어야 할 자리에 십자가가 있는 식으로 보통 가정에는 없는 걸 슬쩍 갖다 놓는 작업을 했다. 수경집은 수경의 캐릭터가 비겁한 지식인이란 설정과 그녀가 광신으로 치닫는 역설을 담기 위해 집 전체에 책을 쌓아놓는 것으로 꾸몄다. 정미(오지은)의 집은 수경집을 다 찍은 다음 완전히 뒤집어서 세팅해 찍었다. 구조는 똑같지만 거울로 보는 듯 반대로 구성했다. 정미 같은 경우 캐릭터 자체가 친구 따라 교회 가는 어정쩡한 인물이라 소녀풍의 공간을 선사했다. 나이는 과년한데 실제 정신연령은 좀 어린. 핑크, 레이스 커튼 등으로 자연스럽게 캐릭터화했다. 무당집 같은 경우는 실제 무당집에서 촬영했다. 신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예산이 없어서. 이런 작업들은 굉장히 꼼꼼히 진행됐다. 이 공간들이 영화의 주무대였고 또 면적이 넓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노력치를 많이 둘 수 있었다. 
 


영화 속 계절은 겨울인데 실제 촬영기간은 2009년 3월 19일부터 6월 6일까지다. 힘든 점이 많았을 것 같다.
너무 속상했다. 옥탑 신 찍을 때가 6월이었는데 만날 술 먹고 울었다. 차라리 이걸 먼저 찍고 세트 촬영 들어갈 걸 하고. 장비 다 갖다 놓고 날씨 기다리느라 흐린 날이 필요한 2회차분을 못 찍고 그랬다. 총 40회차에서 2회차는 전체 5프로에 해당하는 거니 오죽했겠나. 엔딩이 되는 옥상 신은 단 1회차에 찍은 건데 여기에 대해서도 굉장히 속상한 게 많았다. 두 배 공을 들여야 하는 신이었는데 오히려 지금까지 공들인 것에 비해 답답하게 보일까봐. 계절감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시나리오에는 ‘꽁꽁 얼은’ ‘진한 입김’ ‘칼바람’ 이런 이미지가 굉장히 많이 들어갔는데 여건상 너무 따뜻해지다 보니. 영화를 유심히 보는 우리는 더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대세에는 지장 없을 거라며 위로하면서 찍었다. 나중에 투자사한테도 한마디 했다. 할 거면 진작 좀 하지. 한 달만 빨리 했어도 겨울인데.(웃음)

배우들의 연기 역시 영화를 훌륭히 뒷받침한다. 기대 이상을 보여줬던, 혹은 가장 감사하고 싶은 배우는 누구인가? 가능하면 편애를 부탁드린다.(웃음)
일단 남상미 씨한테 제일 고맙다. 주연이고 때문에 고생도 제일 많이 했고. 영화로서는 첫 주연작이기도 해서 걱정을 안 한 건 아니다. 근데 1회차 찍고 나서 바로 안심했다. 현장 분위기나 팀워크가 굉장히 좋았는데 이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도 상미 씨가 큰 역할을 했다. 상미 씨 촬영분이 있는 날에는 분위기가 한결 좋았으니까.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 (심)은경 양은 모니터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 배우는 정말 대단하다. (장)영남 씨나 문희경 선배, (류)승룡 씨, 김보연 선배는 말할 것도 없고. 전반적으로 배우들에 대한 만족도는 굉장히 높다.

철저히 통제된 영화로 보인다. 때문에 배우들의 애드리브 역시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영화 마지막 날 촬영을 마치고 상미 씨한테 작업 어땠냐고 물어봤더니 웃는 얼굴로 “감독님 그거 아세요?”로 운을 떼면서 지금까지 해온 어느 작업보다도 가장 배우를 가뒀던 작업이라고 하더라. 뭘 못하게 만들었다고. 다음 영화는 좀 안 그러고 싶은데 첫 작품이다 보니 일단 준비한대로 찍어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다. 배우들 동선 같은 건 여지가 거의 없었다. 배우들이 좀 답답했을 거다.


영화 내에서 새의 이미지가 꽤 강렬하게 활용된다. 공포스러우면서도 신비로운 이중적인 측면을 동시에 안고 등장하며, 또 흔히 경외감으로 불리는 면에서 신들림 현상에 간접적으로 밀착하고 있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떠오른 이미지인데 어떻게 보니 얼개가 됐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 신 쓰고 나서 스스로 ‘어 괜찮은데?’ 이랬던 기억도 난다.(웃음) 비화가 있는데 사실은 촬영협조가 쉽지 않아서 찍지 못할 뻔 했다. 두루미 새끼를 촬영해야 했는데 가축이 아닌 야생동물이라 포획이 금지되어 있었고 때문에 서울대공원의 협조를 얻어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아서 신을 날려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서 두루미 말고 가축 중에서 다른 동물을 골라볼까 해서 그때 대두됐던 게 외래종 큰 닭이었다. 제작부가 사진도 보여줬는데 보통 닭보다 좀 크다. 근데 닭이 나오면 좀 웃기지 않을까.(웃음) 새를 찍게 돼서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닭을 찍을 뻔했으니.

그밖에도 가위 눌린 장면, 토사물에 범벅된 시체, 작두 장면이나 빙의된 사람의 시각을 마치 <링>의 비디오 장면 질감처럼 초현실적으로 표현해내는 등 상당히 인상적인 신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것도 전략이 있었다.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지만 그럼에도 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오리털점퍼를 뒤집어 쓴 ‘수경귀신 신’을 들 수 있다. 의상팀장한테 80년대 말에 유행했던 그 점퍼를 꼭 공수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런 걸 쓰고 나와서 어처구니없는 대사를 날리면 그게 낯설면서도 무섭지 않을까 싶었다. 왜 무서운 얘기 같은 데 보면 귀신들이 뜬금없는 대사를 칠 때 소름 돋는 경우가 있지 않나. 나는 그게 일상성이라고 생각했다. 귀신스러워 보이면 이미 전형화된 거다. 귀신이야 뭐야, 이런 느낌. 이런 낯섦. 신들린 소진이가 혼잣말을 죽죽 내뱉는데 이 역시 목적어와 주어가 맞지 않는 마구 혼재된 대사를 연출부에게 써보라고 요구했었다. 시나리오 쓸 때도 확실히 달라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옛날에 산발 귀신이 소복 입고 나오면 그걸 보면서 귀신들은 속옷 안 입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귀신을 당황시킬 수도 있겠다하는 엉뚱한 생각, 엉뚱한 귀신을 통해 일상에 있을 법하지만 낯선 느낌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 이런 것들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힘들면서 가장 즐거웠던 부분이다.

이 모든 아이디어는 전부 촬영 전에 면밀히 기획된 것인가?
당일 추가된 아이디어는 없고 적어도 그 전날 완성된다. 시나리오에는 없지만 그 전날 고민해서 이렇게 해볼까 한 적은 몇 차례 있었으나 촬영당일에는 대사의 어미 정도를 바꾸는 것 정도 외에는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구상한 장면들 중에도 편집된 장면이 있을 텐데.
다른 영화에 비해 삭제장면이 별로 없다. 상당히 경제적으로 찍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도 자랑스럽다. 신 자체를 완전히 날린 건 4개가 전부다. 그 중 둘은 10초가 채 안 되고, 나머지 두 신은 엄마와 희진, 소진의 과거 좋았던 때에 대한 회상장면이다. 그 외에는 다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언론시사 때 딱 한 장면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형사인 태환(류승룡)이 어떤 캐릭터의 빙의 사실을 굉장히 쉽게 납득하는 장면이었다.
굉장히 안타깝다. 난 웃을 거라 생각 못했다. 슬픈 장면인데 웃으셔서 깜짝 놀랐다.

사실 병상에서 이뤄지는 태환의 딸과 태환의 대화를 보다 구체화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영화의 두루뭉술한 대사로는 태환이 너무 성급하게 빙의를 인정한 건 아닌가 싶었던 거다. 그래서 혹시 이 캐릭터에게 빙의가 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모호함을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닌가도 싶었다. 
그건 아니다. 실수일 수 있는데 사실 시나리오 과정에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가 나오긴 했다. 그래도 너무 친절하면 재미없을 것 같다고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 부분에서 사람들이 웃는 걸 보면 좀 의아하긴 하다. 좀 급하게 보였을 수도 있는데 여기에는 느리게 흘러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탓도 있다. 속상한 부분이다.

후반부 태환이 갑자기 희진을 과격하게 대하는 장면은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폭력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 과도한 흥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태도다. 형사라는 직업 자체가 마초적이고 이런 마초적인 태환이 이토록 흥분하는 이유는 스스로 혼란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차 안에서 태환이 하는 대사 중에 “누구는 신들렸다고 하고 누구는 구세주라고 하고 놀고들 있네”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태환조차 ‘이게 도대체 뭐야’하는 순간에 이르니 흔들리고 그래서 과도한 행동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다가 모든 게 깨져서 굴복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승룡 씨와 찍을 때는 영화 순서와는 달리 이 장면부터 먼저 찍었는데 감정도와 흥분도를 면밀히 계산하고 진행했다. 

<독> <요가학원> <4교시 추리영역> 등 한국공포영화들이 잇따라 개봉대기중이다. 자신 있나? 어느 정도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나?
기대라기보다는 바람이 있다.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은 넘어섰으면. 그리고 흥행이 됐으면. 제작사와 투자사가 돈을 좀 벌었으면. 영화감독에게 손익분기를 넘기는 것은 일단 우선시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가장 큰 바람이다.

차기작 얘기는 너무 이르지만 그래도 다음 영화는 어떤 영화를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굳이 호러물을 선택하지는 않을 듯한데.
굳이 호러물일 필요도 없고 굳이 안 해야지, 라는 생각도 없는데 지금 생각으로는 그동안 너무 한 음식만 고집했다고나 할까? 너무 극악한 감정을 지닌 채 2년을 살았기 때문에 감정에 지친 건 있다. 그래서 이 영화와는 상반된 밝고 웃음이 가득한 걸 하면 동기부여가 더 잘되지 않을까 싶다. 똑같은 걸 계속하면 지치고 생산적이지도 않을거야, 라는 게 지금의 심정이다. 근데 한 달 정도 있다가 이거 재밌겠다 싶어서 비슷한 호러를 찍기 위해 준비할 수도 있겠지. 영화감독으로서 다작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걸작을 찍기보다는 다작을 하고 싶고 그만큼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는 차기작이 무엇이라는 얘기보다는 차기작을 찍을 수 있을까가 더 관건인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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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다이스 2009/08/12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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