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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와 <끝나지 않은 전쟁>을 보고, 두 작품이 올해를 밝힐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들을 주목하게 된 이유는 위안부 할머니라는 소재 때문이지만, 각각 열정과 냉정의 감성에 어울리는 화법을 채택함으로써 대다수 사람들에게 추상으로 존재하는 할머니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리란 기대를 갖게 만든다.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발견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기억해보려 한다. 안해룡 감독의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와 김동원 감독의 <끝나지 않은 전쟁>. 전자는 '한국영화의 흐름'에서, 후자는 '한국영화 쇼케이스' 부문에서 각각 상영돼 관객과 만났다. 이왕이면 두 작품을 함께 보면 좋겠다 싶다. 모두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삼고 있으나 주요 정서와 시점에서는 차별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과 할머니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관객을 위해선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보다 이성적인 눈으로 한일이 아닌 동아시아 전반을 아우르는 '국제 문제'로 바라보거나 '여성 문제'로 보고자 하는 관객을 위해선 <끝나지 않은 전쟁>이 적합해 보인다.
방식이야 어쨌건, 두 작품이 올해 각종 영화제를 두루 다니며 화제의 중심에 서길 바란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 800회 돌파와 할머니들의 잇단 사망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자니 더욱 그렇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국 연극 <특급호텔>이 최근 서울연극제에 출품되는 등, 이제 (대중)예술인들이 어떻게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시점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먼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주인공은 열 여섯 살에 위안부에 끌려가 7년을 고생하다 전쟁이 끝난 뒤 일본에 흘러가 살고 있는 송신도 할머니다. 그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실을 밝히려는 일본 시민단체를 통해 처음으로 이른바 '커밍 아웃'을 하게 됐는데, 특유의 강인한 성격과 입담으로 일본 전역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까지 치뤄낸, 말하자면 여전사 같은 인물이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기울여 온 기자 출신의 안해룡 감독이 위안부를 소재로 삼은 것은 <침묵의 외침>(2003), <지울 수 없는 역사 - '일본군' 위안부>(2004)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지난한 재판의 결과, 일부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을 받지만 결과적으로 패소 판정을 받은 것을 두고 "(재판은 졌지만 그래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제목으로 붙인 것은 이 영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역사의 피해자로 남기보다 역사의 증언자가 된, 강인한 성품의 송신도 할머니,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다소 껄끄러운 진행과 과도한 감정 몰입을 유도하는 방식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일지라도, 이 할머니의 매력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할머니는 위안부가 일본군 소속이었다는 사실을 일본 취재진 앞에 알리면서도 자신을 그저 불쌍한 피해자로 치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특유의 독기를 잔뜩 드러내면서도 끝끝내 살아남은 강인한 여성의 면모를 과시하며 취재진들에게 "내 말은 하나도 틀림이 없다"고 호통치는 캐릭터다. 소송을 도와주려는 시민 단체 회원들에게도 "대충 하다가 끝낼 요량이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끝까지 해내겠다면 나도 하겠다"는 식으로 추동한다. "사실의 일부는 시인하지만 피해보상은 불가능하다"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비아냥거리며 "니들이 암만 부인해도 사실은 사실"이라며 조롱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과거를 떠올릴라 치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고, 일본 여고생들 앞에 나설 땐 자신도 모르게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도달한 감동의 영역은 바로 송신도 할머니의 성격과 심리, 습관, 그리고 표정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추적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여성으로서 최악의 인생을 걸어왔지만 보란듯이 살아내고 있는 그녀의 얼굴, 굳어버린 표정 밖으로 터져나오는 쾌활한 웃음, 단호한 손동작과 고성의 목소리. 그저 괴팍한 할머니에 불과했던 그녀가 시대의 증언자로 생생하게 살아나는 순간이다. 만약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 누군가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면 아마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그 영역에 충분히 근접한게 아닐까.
반면 김동원 감독의 TV용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은 전쟁>은 위안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의 열거와 사례 추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김동원 감독이 그동안 추구하던 제작 방식과는 달리, 유엔 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송환> <상계동 올림픽> 등을 지켜봐온 관객으로서는 다소 낯선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 역시 그동안 국내외에서 선보인 위안부 다큐멘터리 이상의 파장을 선사하리란 기대를 일부분 접어야만 했다. 전주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중 김동원 감독은 <끝나지 않은 전쟁>에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이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소재에 대해 분명히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을 부끄러워 했다.(그는 현재 1988년작 <상계동 올림픽>의 뒷이야기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은 전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킬 수 있는, 하나의 분기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영어 나레이션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가 왜 당사자인 할머니들과 한일문제로 국한될 수 없는지에 관해 차근차근 설명한다. 중국에서 일본군 사생아를 낳아 키우며 비참하게 살고 있는 중국인 할머니, 아직도 자식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지 못하는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 더불어 미 의회에서 열린 `일본군 종군위안부 청문회'에 나선 바 있는 네델란드의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 등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을 현실로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얼굴을 비춘다. 그들을 바라볼 때, 미처 해결하지 못한 과거는 외면한다고 해서 절대 끝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것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진화'를 증명하는 길임을 확인케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끝나지 않은 전쟁>은 한국인이 아닌, 세계인의 시각으로 관객의 시점 자체를 전환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아쉽지만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진 못했다. 신인감독 상에 해당하는 'JJ-St★r상'에서 특별 언급 됐을 뿐이다. <끝나지 않은 전쟁>은 5월 말부터 열리는 인디포럼에서 다시 한번 상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올해 부디, 두 다큐멘터리가 여러 영화제를 순회하길 바랄 뿐이다. 송순진 기자(film-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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