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학창시절, 강의를 하던 영화평론가 S가 뜬금없이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떤 감독이 행복한 감독일까?” 턱밑까지 차오른 졸음을 이겨낼 만큼 꽤 매력적인 이 퀴즈가 처음엔 그저 개개인의 가치판단을 묻는 선문답이 아닐까 싶었다. 이를테면 비록 작품이 욕을 먹을지언정 관객을 구름처럼 동원하는 감독이 행복한 건지, 아니면 설령 흥행과는 인연이 없을지라도 걸작을 찍어내며 평단의 환호를 먹고 사는 감독이 행복한 건지 말이다. 때문에 내 결론은 (단순하게도) 흥행에도 성공하고 작품성 면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는 감독이 행복한 감독인 걸로 귀결됐다. 결과는? 땡! 이건 처음부터 이지선다의 가치판단을 요구하는 문제도 아니었고 당연히 이런 비겁한 양시론이 정답일 리도 없는 문제였다. 평론가 S가 제시한 정답은 ‘흥행감독’도 ‘걸작감독’도 아닌 바로 ‘차기작을 찍을 수 있는 감독’이었다.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S는 곧 극단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주었다. 조폭코미디 영화로 대박 중에 대박을 친 J감독과 <고양이를 부탁해>로 흥행에는 재미를 보지 못한 정재은 감독, 과연 둘 중 누가 더 행복한 감독일까? 질문과 답변이 오가던 당시까지만 해도 J감독의 다음 작품은 깜깜무소식이었고 이에 반해 정재은 감독은 <태풍태양>이라는 차기작을 선보일 수 있었다. 물론 평론가 S가 차기작을 찍기 힘들 거라 평했던 J감독은 이후 행복하게도 두 편의 조폭코미디물을 더 연출했으며, 정재은 감독은 또 한번 저조한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태풍태양>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만 현재 일본 제작사와 손을 잡고 새로운 작품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S가 예를 들 때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적절한 예였으나 몇 년 새 또 다시 희비가 엇갈린 두 감독. 그들이 각자 가장 행복한 감독의 극단적 예시에서 벗어난 건 정말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요 몇 년 사이 걸어온 길, 즉 차기작을 찍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됐을 감독으로서의 고뇌와 그에 따른 행복은 더욱 분명한 가닥을 내어낸 듯하다. 그만큼 영화를 끊임없이 찍을 수 있는 감독이라는 건 감독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고 최대의 행복이다. 또한 세상에는 인력이 범접하지 못할 영역도 있다지만 이것만큼은 결코 능력 없이는 달성할 수 없는 위업 중의 위업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올여름 극장가 역시 서늘한 영화들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특히나 올해는 한국 공포·스릴러 장르의 흉작이던 작년에 비해 훨씬 많은 작품들이 선보이게 된 것만으로도 우선 괄목할만하다. 8월 12일 개봉한 <불신지옥>과 <4교시 추리영역>, 그리고 8월 19일 개봉할 <요가학원>은 모두 미스터리 구조를 토대로 ‘납량’의 기치를 앞세우며 등장한 장르영화다. 이들의 흥행이야 영화의 신이 관장할 일이니 한낱 인간의 예언 따위가 영향을 줄 리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작품이 보여준 판이한 만듦새만큼은 비슷한 시기 개봉한 장르영화라는 점 이상으로 그 결과를 궁금케 하기 충분하다. 몇 년 전 학창시절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행복한 감독의 조건’을 되뇌었던 것 또한 순전히 이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세 작품의 현격한 완성도 차이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윤재연 감독의 6년만의 신작 <요가학원>은 전작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여성의 욕망을 괴담으로 풀어낸 영화다. 예뻐지기 위해 정체 모를 요가학원에서 일주일간 심화학습을 받는 5명의 여인들은 애써 해석할 것도 없이 성형, 다이어트, 젊음 등 명백한 욕망과 그 반작용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다. 절대미를 쟁취하는 최후의 1인이 되고자 한 여인들이 경쟁구도를 이루는 가운데 반드시 어겨야만 성립하는 금기들이 하나둘 깨어지는 것. 이것이 윤재연 감독이 건네는 두 번째 괴담 <요가학원>의 단조로운 얼개다. 요가학원 원장인 간미희(이혜상)의 여배우 시절 스토리가 이 단순한 괴담에 유일한 변주를 자처하지만 <요가학원>은 끝내 시놉시스 수준의 괴담을 넘어서지 못하며 아이디어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전작에 비해 특수효과는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시각적으로 새로울 건 없고 가짜 서프라이즈 효과에 한껏 기댄 공포 장치는 물론이요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여성의 탐욕 역시 다분히 일반적인 수준에 그칠 뿐이다. 애써 재고 따질 것도 없이 그저 일반적인 수준의 괴담을 목표한 듯한 이 이야기는 전작에 비해 훨씬 많은 아이디어가 가미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평범한 괴담임에도 영화는 6년 사이의 간극과 그에 따른 성장을 언급하기 민망할 만큼 시종일관 안일한 태도로 일관한다. <요가학원>이 160만 관객을 동원했던 전작에 비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지만 영화에 대한, 그리고 감독에 대한 평가만큼은 전작 그 이하일 것이 분명하다.
물론 <4교시 추리영역>과 함께라면 <요가학원>은 상대적으로 더 예뻐 보일 수밖에 없다. 제작사와의 마찰로 감독과 촬영감독이 도중하차하고 더불어 주연배우마저 교체되는 등 심한 몸살을 앓았던 본격추리물 <4교시 추리영역>엔 안타깝게도 최소한의 추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굳이 ‘재연맨’이 등장하는 낯간지러운 연출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살인자는 우비를 입고 범행을 저질렀기에 옷에 피가 튀지 않았을 거라 말해놓고선 채 1분도 되지 않아 주인공의 옷에 피가 튀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결백을 믿는다는 여주인공처럼 영화는 처음부터 어설피 추리소설 몇 권 읽은 것으로 시나리오를 쓴 양 엉성하기 짝이 없다.
현재 <4교시 추리영역>은 언론시사 때 취재진들이 대놓고 비웃은 것을 밑거름 삼아 마치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이런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식으로 마케팅 방향을 선회한 상태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 영화가 건네는 웃음의 본질은 영화 개봉 후 마케팅 방향을 ‘코믹’으로 다잡은 <차우>의 선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범죄는 원하는 바를 얻으려 결백을 도살하고 결백은 범죄에 맞서 온 힘을 다해 싸운다’는 별 대단할 것도 없는 말을 자막까지 포함해 수차례 되풀이하면서 얘기하는 건 기본적인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기대 이하의 영화라는 사실을 스스로 광고하는 것뿐이니까. 어쩌면 <4교시 추리영역>은 처음부터 미스터리 추리물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극장가 풍경이 이를 증명하는데 이 영화는 정말로 여중고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실소를 터뜨리며 관람하다 우리의 승호군이 키스를 펼칠 때 환성(or 비명)을 지르기 위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스타를 위한 스타에 의한 요 스타의 영화는 잘 자라주어 고맙다는 국민남동생을 소비하기 위한 값싼 기획물 수준에 머문다. 처음부터 몇몇 관객들에게는 유승호가 또박또박 국어책을 읽든 말든 전혀 중요치 않은 일이었으니 이 ‘저렴한’ 선택을 비난할 수만도 없을 듯하다. 하지만 매력적인 여배우들을 잔뜩 내세운 <요가학원>조차도 이렇게 값싸게 배우들을 소진시키지는 않는다. 물론 배우들을 적절히 활용하며 자연히 영화의 토대를 단단히 하는 <불신지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지점이고. <불신지옥>은 추리물을 표방한 작품보다도 탄탄한 미스터리 구조를 바탕에 둔 채 매순간 새로운 아이디어로 낯선 장면들을 일궈내면서 여배우들의 물량공세나 유승호급 스타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신인 이용주 감독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마련한다. 또한 <불신지옥>은 두 영화에 비해 감독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히 역설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애써 따질 것도 없이 <요가학원>은 감독의 실책을, <4교시 추리영역>은 감독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영화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내친김에 퀴즈 하나 더. 과연 영화를 만드는 건 누구일까? <카이에 뒤 시네마>가 영화는 감독의 것이라 주장했던 고놈의 작가주의 이래 당연시되어오는 것처럼 정말 영화는 ‘감독’의 것일까? 영화의 성패에 감독의 책임이 가장 막중하긴 하다만 그렇다고 영화감독 자신의 세계 안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의 뜻만으로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하기는 힘들지 않던가. 그렇다면 ‘제작자’? 영화가 제작자의 입김에 의해 산으로 가고 들로 가고 온전히 바다로 가며 만들어지는 상황 역시 우리는 허다하게 보아왔으니 이 역시 틀린 답은 아닌 듯하다. 또 어쩌면 ‘관객’일 수도 있겠다. 대중의 욕구에 부합하기 위함이라는 이 흔한 논리 역시 절대 무시할 만한 요인은 아니니까. 혹시나 ‘스타’는 아닐까? 그분이 오시기만을 목 놓아 기다리고 그분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오늘날 우리 영화의 현실. 영화 제작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시며 티켓파워라는 절대권력을 행사하시는 바로 그 은막의 스타들이야말로 영화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닐까?
도대체 누가 영화를 만드는 걸까? 감독? 제작자? 관객? 스타? 역시나 비겁한 정답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 걸 포괄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자본’이다. 누군가에게는 씁쓸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대중예술이며 고로 크든 작든 돈의 흐름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자본과 독립한 독립영화들이 이 자본이란 정답에 반박하며 영화를 꾸리기도 하지만 이도 결국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이것이 결코 빗겨갈 수 없는 영화의 현실인 게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감독의 영화’를 기대한다. 제 아무리 돈의 힘이 강력해 완전한 독립을 이룰 수 없는 게 진리일지라도 영화는 스타의 영화이거나 자본의 영화가 아니길 바라는 것이다. 진정 그들이 ‘행복한 감독’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때의 행운보다 행복이 더 의미 있음을 깨닫는 영화들과 깨우치는 감독들이 계속해서 행복을 누렸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감독의 영화, 나아가 관객의 영화가 되길 바란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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