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성 영화에서, 특히 한국의 수많은 TV 드라마에서 백혈병은 비극의 주역으로 자주, 얄팍하게 사용됐다. 문외한들에겐 그저 암의 일종이며 고치기 힘든 병 정도로만 인식되는 백혈병.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백혈병이라는 재난이 한 가족을 어떻게 무너트리고 재건시키는 지를 법정 드라마의 틀로 그려낸 영화다.
케이트(소피아 바실리바)는 2살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10년 넘게 싸우는 중이다. 병 걸린 사람은 육체적인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절망에 빠진다. 그런데 그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면 고난은 가족 수만큼 커진다. 엄마 사라(카메론 디아즈)는 변호사 일을 그만 두고 간호에 매진한다. 소방관인 아빠 브라이언(제이슨 패트릭)은 불난 곳에 뛰어드는 것보다 아픈 딸을 보는 게 더 두렵다. 병으로 죽어가는 아이가 있는 가정은 불에 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집과도 같다. 부부에게선 대화가 사라지고, 어린 나이에 부모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큰아들은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르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낭패감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이 집에 ‘맞춤아기’가 있다면 전혀 새로운 시련에 직면하게 된다.
안나(아비게일 브레슬린)는 언니를 살리기 위해 태어난 아이다. 케이트는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여러 장기를 이식 받아야 하는데 가족 중 누구의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다. 결국 부모는 케이트와 일치하는 유전자 조합으로 맞춤아기를 만들어 낸다. 하룻밤 정사로 생긴 원치 않은 아이와 언니에게 장기를 공급할 사명을 띠고 태어난 아이. 둘 중 누가 더 불행할까? 안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꾸준히 골수와 림프구와 줄기세포를 언니에게 공급했고 11살이 된 지금, 신부전에 걸린 언니를 위해 신장 하나를 떼 줘야 한다. 그동안 몸에서 무수한 것들을 빼가면서 그 누구도 안나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좋은 일이라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더 이상은 아니다. 안나는 유명한 변호사 캠벨(알렉 볼드윈)을 고용해 부모를 고소한다. 자신의 의료 해방을 주장하며.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인간의 윤리와 존엄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해답을 향해 가는 영화다. 아픈 딸을 위한 부모의 피눈물 나는 노력은 위대하다. 그러나 병든 딸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딸을 희생시켜야 하고, 아들의 삶이 피폐해져 가는 걸 살피지 못한다. 안나가 케이트에게 신장을 주지 않으리라 결심한 이유는 언니가 죽길 원해서가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신장 하나를 내주면 안나의 남은 생은 온갖 조심해야 할 것들로 가득해진다. 안나는 평생 가져보지 못한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찾길 원한다.
인간의 윤리와 존엄의 문제가 가족이라는 굴레 속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 지를 판단하기란 매우 어려워진다. 맞춤아기라는 게 얼마나 숭고한 것이면서도 한편으로 잔인한 것인지, 생판 남에게도 떼 주는 게 신장인데 그것을 강요에 의해서 하고 싶지 않은 싶은 소녀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병 걸린 딸에게 심장이라도 잘라 주고 싶은 애절함과 또 다른 딸을 장기 기증소로 만들어 버린 모순된 모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누구도 쉽게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가 수만 가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나라면, 내 언니라면, 내 딸이라면.
닉 카사베츠 감독(<노트북> <알파 독>)이 연출한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의 원작은 조디 피콜트의 동명 소설이다(한국에선 ‘쌍둥이별’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각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독특한 형식과 백혈병, 맞춤아기, 부모 고소라는 굵직한 줄기만을 소설에서 가져온 영화는 원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냉철하고 힘 있는 문체로 각 인물의 내면과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한 원작 소설이 매체를 갈아타면서 따뜻하고 미끈한 가족영화로 변모했다. 카메론 디아즈와 아비게일 브레슬린, 알렉 볼드윈 등 스타 배우를 캐스팅해 만든 영화는 원작의 논점을 스크린에 옮겨오면서도 대중성과 재미를 최대한 살려내려 애쓴 모양새다. 문체만큼이나 도발적이던 인물과 대사들은 예쁜 미소를 지닌 무난한 얼굴과 성격으로 바뀌었으며, 바닷가 장면 등 가족애를 부각시키는 극적이고 낭만적인 장치들이 새로이 추가됐다.
또한 엄마와 두 딸에게 포커스를 맞춘 영화에서는 아빠 브라이언과 큰 아들 제시, 그리고 변호사 캠벨의 이야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안나와 동일시된 캠벨의 사정,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지만 가장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브라이언의 중압감, 여동생에게 온 정신을 쏟는 부모덕에 절도와 방화를 일삼는 불량 청소년이 된 제시, 결국 불을 지르는 아들과 불을 끄는 아빠가 된 최악의 상황 등이 사라져버린 영화에선 소설이 전해줬던 날선 아픔이 한층 순화됐다.
그런데 이 정도의 차이점은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는 소설과 완전히 다른 결말을 택함으로써 원작과 차별되려 한다. 인간의 윤리와 존엄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던 원작은 그동안의 갈등과 법적 공방을 무색케 하는 비통한 마무리로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자그마한 바늘로 가슴을 콕콕 찌르며 나아가다가 무지막지한 대못을 박으며 끝을 맺었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엔딩을 보여준다. 이것은 많은 이들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엔딩일 수 있다. 어쩌면 영화 제작진은 원작 소설의 결말에 너무도 커다란 슬픔을 겪어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 중 어떤 게 해피엔딩이고 새드엔딩인지 역시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영화의 결말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면서도 원작의 논쟁을 공론화하기에 충분하다.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베스트셀러 원작의 독창성을 영리하게 옮겨와 상업적 가치와 새로운 해석의 갸륵함을 동시에 획득한 야무진 영화다. 정미래 기자(FILMON)
연관기사
<걸어도 걸어도> - 평범한 가족이 주는 특별한 감동
'REVIEW 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S러버> - 섹시하고 한심한 맨몸의 청춘 (0) | 2009/09/15 |
|---|---|
| <산타렐라 패밀리> - 가족의 재구성 (1) | 2009/09/14 |
| <마이 시스터즈 키퍼> - 가족이란 굴레가 눈멀게 하는 것들 (1) | 2009/09/12 |
| <애자> - 조금 더 구질구질했어야 했을 모녀 (6) | 2009/09/12 |
| <이태원 살인사건> - 보여줄 게 있어, 따라와 봐 (1) | 2009/09/11 |
| <9> - 스타일리시 디스토피아 애니메이션 (0) | 2009/09/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