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문화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G-드래곤의 ‘하트브레이커’가 흘러나왔습니다.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이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하트브레이커’와 미국 힙합 가수 플로라이다의 ‘라이트 라운드’를 함께 들려주며 문화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한 것이지요. 진성호 의원의 이 용맹스런 노력이 과연 어느 정도 성과를 볼지는 미지수입니다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G-드래곤의 표절 논란이 제법 이슈다운 이슈라는 겁니다.
표절 논란이 불거지자 나름 느낌 있는 네티즌들은 그 동안 조용히 묻어가던 표절 의혹들을 하나 둘씩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자면 잘나가는 아이돌들만 표절의혹을 받고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그 중에는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는 노래도 있었고, 음악성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던 비범한 음악인도 포함돼 있었던 겁니다. 가령 그린 데이의 ‘아메리칸 이디엇’이 조영남의 ‘도시의 안녕’을 표절했다는 혐의처럼 곤혹스런 농담이자 괴상한 진실이 존재했는가 하면 90년대의 혁명가로 불리는 서태지의 대한 표절의혹이 마치 종교전쟁인냥 비화할 뻔 한 요상한 사건도 있었습니다(라디오에서 이를 언급했던 윤건씨가 십자포화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 재능 있으신 분들의 이 날카로운 추적을 살펴보자면 새삼 놀라운 부분인데, 유독 G-드래곤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라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명백해 보입니다. G-드래곤은 성공적인 아이돌이면서 동시에 천재작곡가 내지는 천재프로듀서라는 수식어를 사용했기 때문이죠. 물론 대놓고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라고 G-드래곤은 여기저기 음반크레딧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게 거짓일 수 있다니 팬들 입장에서는 배반감이 컸던 겁니다.
그 분노의 이유를 캐기에 앞서 표절은 얌통머리 없는 행동이 확실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표절을 활용한다면 다른 사람의 예술적 능력을 훔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결과가 벌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상업적인 이익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실제 표절 사건이 불거지면 저작권료를 둘러싼 나눠먹기식 분쟁으로 귀결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어요. 플로라이다가 G-드래곤과 화기애애하게 합의를 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저는 이 부분에서 방향을 잃게 됩니다. 가정의 가정을 더하는 것이겠지만 몇 퍼센트의 저작권료덕분에 표절이 피처링으로 둔갑한다면 이걸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요. 천재작곡가 행세를 한 G-드래곤을 사기죄로 고소라도 해야 할까요. 아니면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대동단결, 불매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요. 저작권법에서는 표절을 민사사건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당사자 간에 해결을 본다면 더 이상의 법적제재도 있을 수가 없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이상한 겁니다. 분명 어떤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G-드래곤의 솔로앨범은 상업적으로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겁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이상하게도 저는 요즘 이러한 일들을 아주 많이 보고 있는 듯 한 기분입니다. 기시감이라고 할까요. 아주 익숙합니다.
거대한 욕망의 시스템
요즘 부쩍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어렵사리 대출을 당겨서 운 좋은 자리에 아파트라도 당첨되면 내 집 마련은 물론 일확천금을 마련하게 되는 바로 그 부동산 재테크로 말입니다. 물론 거주지를 마련하려는 기본적인 욕구는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합니다. 하지만 이게 좀 적극적으로 변하면 청약순위를 높이기 위한 위장전입이나 오직 가격상승만을 노린 무한 투자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친구들이나 가족들 심지어 우리 자신이 벌이고 있는 현실이지요. 하지만 분명 우린 알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기가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의 한 해 소득이 몇 천 만원이 될까 말까한 마당에 몇 달 만에 억 단위로 상승하는(물론 하락도 가능합니다) 부동산 가격에 사활을 거는 것은 분명 투기이고 이런 사행심이 국가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그 결말을 예측했을 때 어리석을뿐더러(부동산 버블은 결국 붕괴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윤리적으로는 부도덕합니다. 더구나 그 어떠한 분야보다도 많은 자금이 몰리고 있는 건설업계를 보고 있자면 이 국가적인 부동산 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과연 그럴만한 자금이 없는 사람뿐입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또 어떤가요. 요즘 영화의 흥행은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만반의 준비를 한 뛰어난 작품이 무관심 속에 잊히는가 하면, 이렇다 할 장점을 찾기 힘든 작품이 보란 듯이 흥행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지요. 그래도 어느 정도 확실한 것은 스크린 점유율이 흥행성적을 좌우한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의 완성도나 작품성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스크린을 개봉관으로 확보하느냐’는 이제 흥행의 기본 성립조건입니다. 매우 조잡한 영화라 할지라도 막대한 마케팅 비용과 함께 거대한 규모의 스크린만 예비해 둔다면 뜻밖의 짭짤한 수익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구조의 변화 속에서 영화의 제작방식 역시 달라지고 있습니다. 감독의 이야기, 감독의 주제의식이 그 시발점이었던 영화예술은 이제 마케팅이 용이한 소재, 좀 더 많은 스크린을 차지할 수 있는 이야기에서 그 시작점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좀 더 익숙하고 편한 주제, 내지는 관객의 성향을 면밀하게 계산한 마케팅 전문가들의 선전방식에 이끌려 영화를 선택하게 됩니다. 물론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들은 우리 동네 곳곳을 파고든 멀티플렉스이고 말이죠. 아무리 훌륭한 영화가 있다고 한들 서울 모처 몇 개정도의 스크린을 확보한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 흥행 성적이란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번쩍거리는 멀티플렉스들은 마케팅에 적합한, 그리고 스크린 확보에 유리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쉽게 소비하고 쉽게 잊힐 영화라도 문제될 것은 전혀 없죠. 영화관이 살찔 것이고, 그러한 영화의 제작사들이 부유해 질 테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G-드래곤의 표절에서 보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욕망의 시스템입니다.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 음악인들에게 성공이란 얼마나 중요한 덕목이란 말입니까. 자기가 살지도 않을 집을 3채, 4채씩이나 사들이면서 부를 쌓아 올리고, 영화의 완성도보다 스크린 확보와 마케팅에 온 힘을 다 바치는 것이 지상명제인 이 시스템 속에서 표절이란 너무나 당연한 귀결입니다. 현대의 상업음악 속에서 표절만큼 쉽고 안전하게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과연 누가 이 유혹을 마다하겠습니까?
G-드래곤이 표절을 인정하고, 플로라이다에게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국민에게 석고대죄를 한들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예계약도 불사하며 성공을 꿈꾸는, 지하실 어딘가에서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있는 수많은 연습생들이 G-드래곤의 자리를 대신할 겁니다. 이 시스템의 무시무시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꿈을 섭취해 불의와 기만을 낳는 괴상한 시스템, 그 한복판에 노랑 머리의 G-드래곤이 있고, 그를 욕하고 비난하는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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