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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철 감독의 설득력

PEOPLE ON 2008/04/26 00:04 Posted by 비회원
김덕철 감독은 재일교포 다큐멘터리스트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촬영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건너야 할 강>이란 영화로 데뷔했고, 지난해 두 번째 영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영화사 진진을 통해 국내에 개봉하면서 몇몇 지면에서 소개됐다. 다큐멘터리스트가 유명해지는 일은 흔치 않지만, 그의 경우는 더욱 힘들지도 모르겠다. 김덕철의 방식은 완성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역사를 기록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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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진득하게 귀 기울이는 자의 힘, 다큐멘터리스트 김덕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 그리고 현재와 소박한 희망의 미래를 꿈꾸는 김덕철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다. 신도 가네토, 이마무라 쇼헤이 같은 일본 독립프로덕션 1세대 거장들에게 머리가 아닌, 발로 찾아낸 진실로 영화를 만드는 법을 배운 그는 진중하고 끈질기게, 카메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지난 겨울, 인터뷰 차 그를 만나게 됐다. 한국말이 썩 익숙치 않았지만 열심히 자신의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하던 그는 한국 사회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함께 비판적 견제도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재일교포라는 자신의 개인사를 십분 활용해 객관과 주관을 두루 아우르는 시각을 견지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조급해하지 않고 강 건너의 희망을 바라보려는, 긍정의 힘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낡은 메모지에 이메일 주소와 일본에서 사용하는 핸드폰 연락처를 적어주던 김덕철 감독은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얼마 전, 김덕철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일본에서 개봉을 준비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곧 <우리 학교>란 성공사례를 낳은 '공동체 상영'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FILM2.0 기사를 관련 카페에 올리는 일로 한번 만났으면 한다는 말에, 얼마전 회사에 사표를 냈다는 생각도 잊은 채 약속을 잡았다. 문득, 아차 싶었다. 더이상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나 싶어서. 새로운 영화 소식을 들은들 기사 한 줄 쓸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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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언저리 카페에서 다시 만난 그는 여전한 긍정의 얼굴을 하고 여러가지 소식을 전해줬다. 반가웠던 것은 <강을 건너는 사람들>에 출연한 여고생 다카키 구미코의 근황이었다. 영화 촬영 당시만 해도 여고생이었던 쿠미코는 이제 20대 중반의 직장인이 되었는데, 얼마전 김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직장에 사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살았지만 다큐멘터리 속 자신의 여고시절을 보고 무언가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노라고, 김 감독에게 말했다고 한다. 현재 쿠미코는 피스보트(세계 평화와 인권, 환경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하기 위해 1983년 만들어진 일본의 국제적 시민단체)에 참여해 5월 초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으며, 김 김독 역시 그녀의 출발을 촬영하기 위해 일본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김 감독과 쿠미코의 인연을 듣고 있노라니, 누군가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는다는 것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것은 김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찍는 방식처럼 진득하게 귀를 기울이고 지켜봐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했을 일이 아닐까 싶다. 김 감독은 여고생 쿠미코를 찾아내 영화를 만들었고, 그녀는 김 감독의 카메라에서 자신의 10대를 다시 발견했다. 쿠미코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김 감독은 그 출발을 또 기록한다. 여기, 이 세계 어딘가에선 진정한 의미의 '상생'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또 한 명의 쿠미코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김덕철 감독에게 소개했다. 그녀는 미국 텍사스 출신의 재미교포 2세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안식처인 '나눔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외국에서 나눔의 집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역사와 배경을 알려주고, 새로 들어온 자원봉사자들을 교육시키고, 할머니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게 그녀가 하는 일이다. 김덕철 감독이 오랜 시간 찍고 있다던 김학순 할머니를 실제 만나고 기억하는, 몇 안되는 교포 자원봉사자이기도 하다. 한일의 역사적 문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지만, 김 감독은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에서 위안부 할머니에게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넣고 싶다며 그녀를 만나고 싶다 했다. 빠른 시간 내에 약속이 다시 잡혔고, 김덕철 감독은 또 한 명의 쿠미코일지 모를 그녀와 첫만남을 가졌다.

누군가의 삶을 끝까지 지켜본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쩌면 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주목받고 싶어하지만, 반대로 지켜보는데는 익숙치 못하다. 김덕철 감독의 방법론이,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방식이 나를 설득한 부분은 바로 이런 점이다. 이참에, 나도 한번 누군가의 삶과 어떤 이들의 인연을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 그러다보면 언젠가 강을 건너겠지, 하는 낙관의 힘도 함께 말이다. (www.film-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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