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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서울독립영화제는 ‘경계에 선 주변인’, 장률의 전 작품을 소개한다. 이미 주요 국제영화제를 통해서도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재중동포 감독으로 잘 알려진 장률 감독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일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특히 이번 특별 초청에는 장률 감독의 단편 작품 <11세>와 <사실>, 그리고 우혜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장률>을 함께 볼 수 있어, 그의 영화뿐 아니라 감독 장률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시선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국적은 중국이며, 민족은 조선족, 언어는 중국어와 한국어 모두를 사용하는 장률 감독은, 정체성이 어느 한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경계적 존재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소통 부재의 언어, 고정된 카메라, 직선으로 구획된 중층적 프레임 구성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 기억, 경계들을 드러내고 있다.
“강제 이주자들, 망명자들, 고향 상실자들, 유목민들은 공통적으로 두 가지 한을, 두 가지 향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곧 죽음과 언어이다”라는 자크 데리다의 인용으로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장률>은 영화를 만드는 이방인 장률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계에 선 이들의 삶과 죽음의 작은 역사는 언어로 기록되고 기억되는데, 장률은 그 오랜 기억을 가진 인물들을 영화를 통해 재현해 내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두만강> 제작의 캐스팅 과정부터 자신의 DVD에 코멘터리 녹음을 하고 인터뷰를 하는 모습까지 감독 장률의 삶을 더욱 밀착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률의 최근작 <이리>와 <중경>에서 이리와 중경이라는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이 두 개의 로컬들은,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인물들로 연결된다. 이 하나이면서 둘인 영화 속 두 개의 도시는 곧 두 개의 캐릭터가 된다. ‘폭발 직전의 도시’ 중경과 이미 ‘폭발을 경험한 도시’ 이리는 잿빛 풍경의 패닝 프레임 속에서 너무나 닮아 있다. <이리>에서 진서가 일하는 중국어 학원의 칠판과 <중경>에서 쑤이의 교실 속 칠판은 언어를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장률의 영화들 속에 즐겨 등장하는 프레임 가득히 자리한 벽과 다름없어 인물들의 소통은 오히려 막혀있다.
하늘과 땅의 경계, 언어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영상으로 전달하는 <경계>에서는 언어로써의 소통은 불필요하다. 어떤 언어를 선택하여 발화하며, 또 어떤 언어로 번역해내는가에 따라 우리가 사고하는 틀은 달라지게 마련인데, <경계>에서는 그 언어와 번역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시공간을 보여준다. <이리>와 <중경>이 인물들의 기억으로 연결되는 형식을 보여준다면, <경계>와 <망종>은 관객의 기억을 통해 연결된다. <망종>에서 김치를 파는 조선족 엄마 최순희와 아들 창호는 <경계>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관객은 <망종>의 최순희와 창호를 다시 소환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둘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고 두만강에서부터 긴 여정을 겪어 몽골의 한 유목민 헝가이의 집에 도달한다. 최순희와 창호, 헝가이는 언어의 경계, 공간의 경계에 서 있지만, 나무를 심고 양을 치는 일상의 노동을 통해 소통하게 된다. <경계>에서 고정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미세한 흔들림을 보여주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롱쇼트의 조합은 인물들의 심리상태의 작은 떨림까지 보여주는 듯하다.
장률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당시>는 그가 구상하고 있는 중국문학 3부작(<당시唐詩>, <송사宋詞>, <원곡元曲>) 중 첫 번째 작품이다. 형식과 내용이 자유분방한 ‘송사’와 달리 ‘당시’는 엄격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내용은 자유롭다. 마치 영화라는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시나리오 없이 찍은 <당시>처럼 말이다. <당시>에서는 예의 장률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을 아파트 공간 속에 한정되어 있는 고정된 카메라와 늘 프레임의 반을 차지하는 집안의 벽이, 주인공의 고립된 삶의 모습과 죽음의 긴장을 서늘하게 전달하고 있다.
다른 듯 이어지는 장률의 영화들을 통해서 우리는 2009년 현재, 어쩌면 세계화 시대의 경계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경계의 이방인들을 관찰할 장률의 다음 작품, <두만강>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 2009에서 특별히 마련한 감독 장률의 세계를 꼭 만나보길 권한다. 김수현(서울독립영화제2009 해외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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