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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2_ 독립영화 배급, 2009 진화의 순간
일시: 2009년 12월 15일(화) 오후 4시
장소: 인디스페이스 3관
사회: 원승환(독립영화 배급지원센터 소장)
발제: 김화범(인디스토리 제작기획팀장), 이상엽(시네마 달 배급팀장)토론: 김정우(상상마당 배급팀장), 김조광수(청년필름대표, <친구사이?>감독), 안해룡(<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감독)
원승환> 그 동안 독립영화의 배급을 평가하는 기회가 없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한다.
세미나 제목은 독립영화 배급이 2009년에 진화했다는 뜻이다. 진화를 진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스티븐 제이 굴드라는 생물학자가 저서 <풀하우스>에서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고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이 구절이 생물학에만 적용될 뿐 사회적 문화적으로는 적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2009년 독립영화가 배급되는 모양새를 보면 과거에는 단관중심이 주류였지만 2009년에는 다양한 모양새가 나왔다. 독립영화 역시 생물학자의 말처럼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제목을 지었다.
발제는 공동 프로모션을 담당하셨던 두 분이, 토론은 네트워크 배급에 평가와 모색을 함께 해주실 세 분을 모셨다. 세미나는 발제를 듣고 토론을 한 다음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
발제 1. '공진'(공명)에서 '공진화'로-'2009 희망다큐 프로젝트'의 성과와 희망
발제자_ 김화범(인디스토리 제작기획팀장)
김화범> 인디스토리에서 일하고 있는 김화범이다. 그동안 배급 세미나에 참석을 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나왔다. 나는 직접적으로 배급사 네트워크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꼈던 희망다큐프로젝트의 단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인디스페이스에 있었던 경험도 결합하겠다. 앞으로 배급사 네트워크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발제는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가 주로 될 것 같다. '공진'(어떤 물체의 진동 에너지가 다른 물체에 흡수되어 그 물체가 진동하는 것을 뜻함, 공명)과 '공진화'(생물들이 서로 생존이나 번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진화하는 것, 협조적인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개념이 명확하게 쓰였을지 잘 모르겠다.
'2009 희망 다큐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겠다. 2008년 하반기에 다큐멘터리 라인업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배급사마다 배급 라인업이 다르다. 또 자사 위주로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단결적인 홍보마케팅 방법을 찾았고, 시기적으로 다큐 장르가 맞아 떨어졌다. '다큐멘터리는 희망이다.'라는 큰 틀에서 공유를 하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1월부터 6월까지 매달 <워낭소리>,<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할매꽃>,<살기위하여>,<길>,<3XFTM>의 작품들이 한 편씩 개봉됐다.
또 '다큐 프렌즈'라는 이름으로 매달 상영관에서 배우와 감독들이 함께하는 홍보를 했다. 희망 관련된 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게시하기도 했다. 공동으로 광고를 냈고, 온라인 서점 알라딘, 인문사회과학 출판인협의회를 통해서 작가와 감독과의 대담을 한다든지 하는 작업들이 6개월 동안 진행됐었다. 실제로 매달 이렇게 진행한 예는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9 희망 프로젝트의 성과와 되짚어봐야 하는 점에 대해서도 설명하겠다. 일단 희망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떤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아야 할 것 같다.
'http://cafe.naver.com/docufreinds'의 소개글에 있는 "독립영화 배급사들의 연간 배급라인업 공유 및 공동 마케팅 전략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배급시스템과 윈윈 전략으로 시너지를 내고자 합니다." 라는 말이 희망 다큐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목표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개별적으로 이뤄지던 배급이 시기적으로 연결돼 개봉되면서 서로에게 징검다리가 될 수 있었던 홍보 전략이었다.
간단한 예로 인터뷰를 할 때 희망프로젝트를 언급한다든지, 기사에 작품들이 공동으로 실리는 방식이 있었다. 이렇게 앞과 뒤에 있는 영화들을 계속 이을 수 있다. 개별적으로만 진행됐다면 다른 회사의 작품들을 언급하지 못 했을 것이다. 전반적인 다큐멘터리영화 현황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인 작품 이름은 언급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워낭소리>가 워낙 주목을 받아서 다른 작품으로 관심이 가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뒤에 개봉한 개별 작품의 배급과 홍보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워낭소리>가 흥행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객관적인 상황에서 일어났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실무에서는 배급 패턴들 중심으로 풀어가다 보니 공동의 프로모션, 가치라는 부분에서는 판단이 미흡하고 내용이 많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소박한 수준의 내용이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공동프로모션이 활성화되려면 일정하게 프로모션하는 영화들과 배급사간의 가치가 공감을 많이 하고 실무자 선에서도 얘기가 많이 돼서 일정한 영역을 확보하는 부분에서 배급력을 확보하는 영역 안에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극적인 실행전략으로서의 공동프로모션은 조직의 상황에 따라 들쑥날쑥한 것이 아쉬웠다.
'다큐프렌즈'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작은 영화들이 다양한 홍보를 해냈다. 인적네트워크의 활용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스킨십을 넓혀간다는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 좋았다. 당시 만난 분들을 계속 모을 수 있는 자리를 가져서 인간관계의 고리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큐멘터리가 개봉 전에 활성이 된다는 부언을 하는 것은 논외로 하고 말씀드리겠다. 앞으로는 정책적 환경의 변화가 분명 있을 것이다. 저도 여전히 그 방향성에 대해선 물음표이다. 그러나 방송에서도 분명 좋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북극의 눈물>같은 작품이 개봉되는 것이 그것이다. 다큐멘터리의 환경 변화는 관객들의 작품 선택에 대한 가치 판단도 변화시킨다. 희망프로젝트가 다큐와 관객의 주파수를 다양하게 만든 측면에서 함께 한 첫걸음이다. '중요하게 끌고 나가야 할 거리'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발제문에서는 남겨진 과제들에 대해서 공정하고 좀 더 다양한 대안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말을 했다. 환경이 어떤지 본격적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만든 사람의 입장, 배급하는 사람의 입장을 둘 다 생각해야 한다. 다큐를 바라보는 시각이 산업적 관점만 있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가 돼야 한다. 왜 <워낭소리>가 관객과 공진했는지 수용성 부분도 정책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화두는 '함께 가야한다'는 것이 아닐까. 배급하면서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인데, 제작자가 '만든 사람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안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반문해 본다. 관객의 요구를 따라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질 때 보통 기획이 약한 경우가 많은데, 그에 대한 것들을 말한다. 기획 조사 등에 대한 지원, 현실적인 제작비를 고려한 스텝구성, 다양한 형태의 상영회, 다큐멘터리 학교, 교육현장에서 다큐멘터리 활용도 등. 제작과 관객이 만날 때 서로 공진할 수 있지 않을까.
원승환> 희망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해 주셨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공동기획이 배급을 맡고 배급 실무자에게 전달이 되면서 진행된 부분에서 일정한 한계가 있지 않나,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영화가 각각의 배급지원비를 받고 진행됐기 때문에 배급역량에 따라서 영화 홍보의 범위가 다 달랐다. 공통된 가치에 대해 공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평가해주셨다.
'다큐프렌즈'를 통해 영화인들이 인적네트워크를 희망프로젝트의 주목할 만 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후속작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말씀하셨고, 영화 시장 내의 파이를 키운다는 것이 아니라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관객과의 스킨십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특히 관객과의 소통이 필요하겠다는 제안을 해주셨다.
이어서 짧은 발제를 듣겠다. 이상엽 배급팀장님이 함께 하셨던 실무 담당자로서 말씀해주시겠다.
발제 2. '2009 희망다큐 프로젝트'를 돌아보는 몇 가지 메모
발제자_ 이상엽(시네마 달 배급팀장)
이상엽> 저는 일 년차 배급사에서 일하고 있다. 성과를 돌아보고 이런 것은 주제를 벗어나는 일 같다. 희망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느꼈던 몇 가지를 이야기하겠다.
배경이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2008년 하반기 아트플러스시네마네트워크 개봉작 선정 지원 사업'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반기 하반기를 나눠서 개봉지원을 했는데 2008년 하반기 지원 사업에 다큐멘터리가 대거 선정되는 이변이 있었다. 총 9편중에 5편이 다큐멘터리영화였다. 보통 다큐멘터리는 한해에 2편 지원됐는데, 덕분에 한꺼번에 다큐멘터리가 선보일 수 있었던 조건이 됐다.
그러나 배급사를 새로 만들고 6개월이 된 시점이어 미숙한 시기였다. 어떡해야 하나하고 막막했다. 인디스토리에서 공동프로모션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저희로서는 고마웠다. 전체적인 기획을 갖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지원받았던 작품의 개봉준비를 하며 인디스토리의 세 편을 묶어서 배급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시네마 달은 독립영화 배급사 네트워크 준비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네트워크가 준비한 사업으로 준비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2009 희망프로젝트가 나오게 된 것이다. 준비된 과정에 딱 맞는 성과와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공동광고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맥스무비가 광고와 이벤트 지원을 해주셨다. 무비위크에서 는 매달 다큐작품에 대한 여러 기사를 제공해줬다. 잡지 맨 윗줄에 '희망프로젝트를 후원합니다.'라는 멘트를 같이 적어주는 것 역시 희망프로젝트의 존재가 많이 알려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알라딘과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가 작가를 선정해서 대담회가 있었다. 다큐를 좋아하는 관객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들이 영화를 잘 보고 얘기를 해줬고, 관객들이 영화를 이해하는 정도도 최상이었다. 다큐프렌즈는 기존 영화인들이 홍보해주셨고, 그분들을 모시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됐다. 온라인 까페도 운영했다. '다큐프렌즈'라는 말이 입에도 잘 붙어서 다큐멘터리를 지원하는 모든 통칭으로 사용하게 됐다.
내 생각엔 시작은 미미했지만 서로 다른 주체들이 매달 한 편의 영화를 같이 공동 프로모션 하며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희망 다큐 프로젝트를 해보고 난 후 단편 프로젝트는 어떠냐며 공동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이 지속되고 있다. 매년 이어져서 다른 형태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희망독립영화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원승환> 희망프로젝트가 가능했던 배경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희망프로젝트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언급해 주시면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작가와의 대화라든가 여러 가지 주제와 소재들을 함께할 수 있는 곳을 만나서 영화나 공동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작가들을 선정해서 관객들을 늘여 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해주셨다.
희망프로젝트의 성과라면 서로 다른 배급사들이 6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공동프로모션을 고민한 것이다. 어떻게 평가되는지에 따라서 희망 단편프로젝트 혹은 독립영화 프로젝트 등 배급사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동 프로모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찬 마무리를 해주셨다.
실제로 배급사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6편의 영화가 함께 참여한 것이다. 감독 같은 경우에는 몇 년 동안 만든 영화를 선보이기 때문에 배급사와 감독의 입장이 다르다. 안해룡 감독님이 배급 참여를 하셨고 희망프로젝트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 주셨다. 참여한 입장에서 희망프로젝트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안해룡> 희망과 좌절. 희망을 품었는데 좌절이 왔다. 작품으로서는 첫 극장개봉. 몸으로 뛰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었다. 주변에 독립영화를 배급했던 관심 있는 사람들 말고는 일반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망다큐를 고민하기 전에 워낭이라는 원자폭탄을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 주체로 언급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속으로 언급이 되니까 문제가 됐다. 지나보니까 도움이 안 된 것이 현실적인 얘기다.
‘희프’를 얘기하기 전에 현장을 뛰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인상들은. 굉장히 참담했다. 독립영화의 배급을 고민하고 있었고, 준비나 고민들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배급의 현장에 대한 실상, 극장의 조건, 현황, 데크의 수급문제 같은 데이터가 하나도 없었다.
가령 개봉극장을 늘릴 수 있었는데 CGV는 틀어준다는 전제조건이 ‘데크를 갖고 들어와라’는 거였다. 마케팅 정산해보는 과정에 보니까 부산 서면에서 개봉했는데 데크 임대료가 90만원 상영료는 70만원. 돈 없는 독립감독이 빚내서 상영하는 것. 그런 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아트플러스 관련된 형태의 지원프로그램에 대한 효과성에 대해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오지 않더라. 사람은 없는데 하루 7차례 상영된다. 2명, 10명, 가끔가다 3명씩. 그런 극장을 틀어야 하는 현실.
현실을 몰랐던 것과 현장을 경험하고 난 후의 상황.
영진위 가서도 프로그램 진행자가 바뀌어서 얘기를 했는데. 아트플러스를 관객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관객들이 볼 수 있게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나. 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다큐프로젝트로서는 정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배급사 내부에서 여러 요인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감독끼리의 일종의 회의. 경험의 공유 가 이뤄지지 못했다. 개봉하면서 여러 이벤트 중에 술 먹다 나온 아이디어가 다음날.. 기동타격대 식의 아이디어. 그게 수용되면서 진전된 적도 있지만 그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공동프로젝트 프로모션을 알릴 수 있는 기념엽서. 이런 것도 워낭에게 묻혀있을 때 나온 맨 마지막 아이디였다. 워낭소리 홍보에 만들어지는 전단 모양새의 반만이라도 따라 갈 수 있었다면. 워낭에 힘입어 펼칠 수 있는 것을 못했다. ‘워낭’자체는 자기영화 막는데 급급했다. 설계를 배려하는 것을 당시에는 할 수 없었다. 이런 프로모션을 개발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탓하는 것은 아닌데 지나보니까 아쉽다. 더 많은 프로모션 방법이 없었을까. 그런 정교함. 사전준비가 없는 것. 마케팅 기획안 같은 것들이 준비되지 못한 것, 포스터 준비 미흡.중요한 순간을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희프’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배급에 대해서는 과부하가 아니었는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배급은 인디스토리, 청년필름, 공동체배급은 달에서. 세 개의 회사로 분산돼서 힘을 집중하지 못했다. 인디스토리에서도 워낭소리 넘쳐나서 하지 못했던 거고. 여러 가지 제한을 낳는 사안이었다. 배급라인의 한계와 능력을 벗어나는 일들이 상반기에는 일어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럼 개봉 늦게 하면 되지 왜 워낭소리 투정하냐 는 혹자의 말도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그런 힘들이 있어서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력투구해서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행태가 조금씩 허물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희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었다. 극장의 현실을 알 수 있었다. 상영관이 갖고 있는 악조건도 알 수 있었다. 미로스페이스에서 상영이 꽤 됐는데 수금이 안 되고 있다. 정산이 안됐다. 표면과 내부 차이의 갭이 크다. 그런 갭들을 너무 탁상 논의로서만 풀리고 자기 스스로만 답을 냈기 때문에 현실에 관한 구체적인 고민들과 해결방안들이 실제로 해결의 방안이 될 수 없었다.
‘너도 그렇게 되는 거야’ 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한테는 그렇게 되지 않더라. 제작을 넘어서 관객과 직접 만날 수 있는 현장들을 돌아본 것들. 현장에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것들. 어떤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것인가. 내영화의 메시지를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봤다. 상영에 대한 공동프로모션을 고민해봤는데, DVD 만드는 것도 토탈 라인이 없을까 고민을 해보며 어제 시뮬레이션을 해 봤다. 600장을 팔면 이익이 나더라. 머릿속으로 하는 것과 실제의 차이가 굉장히 컸다.
원승환> 영화작업은 오래 하셨지만. 극장개봉을 처음 하셨던 소회를 말씀해 주셨다. 계획이 정교하지 못했던 ‘희프’. 배급사간의 논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감독들 간의 만남의 장, 토론, 경험의 공유는 없지 않았나. 한 달에 한 편씩 여섯편을 정해놓고 진행했기 때문에 세 편 세 편씩 인디스토리, 달, 이렇게 진행돼서 과부하 걸린 것은 아닌가. 영화를 밀어내듯이 일정에 맞춰서 개봉한 것은 아니었나라는 아쉬움을 말씀해 주셨다.
독립영화 배급 주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나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꾸준히 실행할 수 없는 것에서 많은 좌절을 느끼셨던 것 같다. 상영은 정해진 일정이 있었지만 배급이라든가 이런 것은 다른 일정을 짤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것이 이뤄졌어야 하는 것 이 아닌가. 제기하신 문제에 대해서는 종합토론으로 하도록 하자.
상반기에는 다큐를 ‘공프’, 하반기에는 단편을 모아서 공동프로모션하는 것이 어떨까. 12월 19일 개봉 앞두고 있는 친구사이, 디엔드, 상상마당의 단편 작품들도 있었는데 같이 프로모션 하는 것이 어떨까 했지만 그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희망 단편프로젝트를 같이 고민하셨던 김정우 과장님 다큐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 무산 과정. 배급사들간의 공동 프로모션을 만들 때 내용이 부족하고 고민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김정우> 제 소개를 하자면 네트워크 모임 중에 상상마당에서 합류한 토론자다. ‘희프’는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봤다. 독립영화 배급에 대한, 희망단편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제가 나왔다.
올 초까지는 상업영화 배급을 했었다. 저예산 영화, ‘영화는영화다’, ‘기담’, 작가주의 영화도 했지만 ‘테이큰’ 같은 상업영화도 했다. 그러나 2009년 독립영화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워낭소리’였고, 10년 뒤가 된다 하더라도 2009년을 빼지 않고 얘기 할 것이다. 워낭소리가 가진 빛이 밝은 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8월 중순 이후에 다른 영화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입장에서 일반 관객으로서 독립영화 배급 일원으로서 ‘희프’를 짚고 넘어가겠다.
상상마당은/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반두비’를 제작지원. ‘황금시대’, ‘어떤 방문’. ‘사사건건’ . 단편프로젝트를 옴니버스로 개봉할 예정입니다. 세편은 모두 단편 옴니버스다. ‘희단프’의 주된 구성원이 됐다.
진행이 사실 안됐다. ‘스텝’은 그냥 개봉을 했다. 그 외의 프로젝트를 진행을 했는데. 배급사는 단 세 곳이었고 제가 들어온 이후로 독립영화 네트워크가 외형적인 성장을 했다. 그러나 독립배급사네트워크는 ‘단편프로젝트’에서 아직도 진행이 안 되는 상황으로 알고 있다. 서로 공감대가 느슨해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희프’를 추진했던 추동력 이 많이 옅어진 듯하다. 자기 얘기 아니니까 먼 산 보고. 처음에는 가족적이었다가 점점 커지면서 결속력이 떨어졌다. 전에는 고민을 같이 했지만 지금은 라인업을 같이 얘기 하는 것이..
‘나도 할게, 너도 하자, 이 날짜 하기로 했는데 안하면 얼굴 안 보자는 거고(농담)’
제가 잘 아는 분야는 배급방식에 대한 부분인데, 필름은 한 번 찍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상영 프린트 하는데 수 백 만원. 3200만원 3300만원한다. 그러나 혁신의 기원인 디지털배급이 시작됐고, 디지털 후반작업 지원하는 곳을 만들기도 했다.
이 시스템은 디지털 시네마로 상영하는 것인데 각 단위에서 영진위에서 개봉지원, 마케팅지원과 별개로 독립영화를 지원했다. 주체가 극장 또는 대기업이 됐다. 필름 디지털 상영의 대가로 가상 프린트 비를 지원했다. 대동강 물 팔아먹는 봉이 김선달과 다르지 않다.
원승환> 독립영화 배급을 시작할 때 관객으로 보았던 희망다큐 프로젝트에 대해서 상업영화에 비추어 여러 말씀 해주셨다. 단편 옴니버스 개봉을 준비하면서 ‘희단프’를 준비했으나. 독립영화제 회원사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함께 이런 프로젝트를 꾸미고 집중하는 동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말씀을 해주셨다.
버츄얼 프린트비 같은 경우는 같이 잘 했다기 보다는 상상마당이 뚫고 나간 면이 있고. 디지털배급과 같은 내용이 공유되면서 일을 만들어 가는데 네트워크가 일정한 기능을 한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인디스페이스 개관 이후에 편수가 늘어가면서 독립영화 배급의 범주에 놓을 수 있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편수가 몇 편 안됐는데, 지금은 비슷한 배급을 원하는 영화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상처주지 않으면서 배급 일정을 맞춰 나갈 수 있을까. 가칭인 ‘배급사네트워크’가 가져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는 것 같다. 준비단계로 이 ‘배급사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데, 1년이 지나면서 친분모임으로만 계속 끌고 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니면 뭔가 해야 되나.
내년을 전망하기 위해서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김조광수 감독님께서 네트워크 가입한 이유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면이 있는데 개봉은 혼자 하고 계시다. 영진위 지원 없이 개봉을 준비하고 계시면서 독립영화 고민하는 사람들이 함께 풀었으면 하는 것. 무엇을 제안하고 싶으신지, 토론하고 발제내용을 섞어 이야기 해달라.
김조광수> 저희회사에서(청년필름) 안해룡 감독님이 만드신 영화를 마케팅 하는 역할을 했어요. 희망다큐 프로젝트 일원이기도 하다. 극장 개봉하는 일도 같이 하고 있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잘 안 된다. 잘되려고 했는데 안 됐다.
초반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회사에서 제작한 이송희일감독의 ‘탈주’라는 영화와 ‘환상기담묘’라는 옴니버스가 있다. 왜 도대체 같이 마케팅을 못하나. 같이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작은 규모라는 것은 맞지만 그 외의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다. ‘친구사이’에 ‘탈주’를 넣는 것이 안 좋은 역할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봉하기 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친구사이가 90을 차지하고 탈주가 10을 차지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을 것. 회사 내부에서도 그것이 잘 안 된다.
많은 작품을 모아서 공동으로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독립영화니까 가능하다. ‘희프’는 다큐가 상황이 어렵고 독립영화가 영화제를 통해서 감독끼리 친분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은 인디스토리가 모아서 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반기 ‘희망단편’이 안됐던 것은 배급사도 다르고, 제작팀도 다르고, 주체가 다르니까... 안됐던 것이 아닌가. 독립영화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희망다큐’에서만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좀 전향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내가 손해 볼 수 있지만 참여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독립영화가 워낭소리가 상반기를 휩쓸고 가기 때문에 ‘희프’ 가 아니었던 다큐도 다 안됐다. 감독이 됐던 피디가 됐던 자기 것을 손해 보는 느낌이 있어도 멀리보고 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다큐 말고도 극영화, 다른 것이 되더라도 몇 번의 실험은 더 해봐야 될 것 같다. 다른 장르에서라도. 이것을 가지고 토론을 하고, 성과도 남기고, 앞으로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생각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급사 내에서의 네트워크 충분히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희망다큐에서 할 수 있는 것. 유명한 배우가 들어와서 홍보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마케팅을 해보니까 배우가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울리지 않은 배우는 효과적이지 않다. 관객들이 그 배우 때문에 더 영화를 봐주는 것이 아니다. 작가와 감독이 만나는 프로그램이 더 유용할 수 있겠다. 홍보보다는 관객을 늘리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감독, 평론가들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를 늘려가는 방식이 좋겠다.
배급과 관련해서도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친구사이’ 배급을 한다고 극장들과 접해보니까. CGV, 메가박스는 '영화는 해볼만 해보겠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디지털로 만들거나 필름을 가져가거나 해야 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데크만 있으면 됐는데 요즘은 데크 상영을 안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루에 몇 십만원 어치의 관객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HD를 바꿀 기기를 빌릴 수 없었다.
외국의 독립영화, 예술영화는 필름으로 들어오기 땜에 괜찮다. CGV 무비꼴라쥬는 한국의 독립영화는 틀지 않는데 그런 데 있어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그런 것을 보면 점점 상황이 ‘독립영화를 상영하는데 있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독립영화들은 HD이상으로 촬영하여 상영하면 상관 없겠지만 HD이하의 카메라로 촬영하면 안틀어주겠다 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원승환> 청년필름에는 ‘친구사이’ 말고도 다른 영화가 있는데 회사 내에서도 공동 마케팅이 쉽지 않다. 공동마케팅이라는 것이 뭔가 스스로 손해 보는 느낌이 있어야 같이 갈 수 있을 텐데. 그런 분위기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희프’가 됐던 것은 감독들이 함께하려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희프’는 작가와의 만남처럼 특화된 프로그램들이 효과적이었다.
배급사 공동프로모션보다는 불공정한 배급환경, 독점적인. 독립영화가 배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도 아울러서 해 주셨다. 오늘 토론 말씀을 들으면서 영진위 배급지원을 받은 영화만 공동프로모션 하는 것이 속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안해룡 감독님이 데크라도 하나 써서 돌려쓰자는 제안을 해보자 하려고 했는데 데크도 안된다니까 컴퓨터를 사서 돌릴까(웃음)
안해룡> 영진위 지원을 받는 아트플러스 네트워크 개봉관. 일정한 데크 시설을 제공하지 않으면 아예 심사 뺀다든지. 롯데시네마는 디지털 전환 방식도 다르다. 두 군데 개봉하면 두 군데 다 전환비용이 든다. 속 시원하게 지원해준다는 것이 속편하고 실질적인데.. 무조건 감독이 다 안는 지원은 명백하게 공개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산 못 받은 극장들, 그런 극장들은 영진위로부터 지원하지 말아야 되는 거다. 지원 받은 프로그램은 언제까지 조건을 붙이던지. 관리 안 되는 지원도 의미가 없다. 관객이 얼마 썼는지, 숫자가 얼만지. 현장의 수치를 갖고 있는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결국 고민하는 것은 제작자고, 실질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수치만 높은 것은 의미가 없다. 실제로 개봉하면서 극장을 돌고 데크 배달하고 하다 보니까 허수가 많다. 빨리 제거하고 독립영화가 개봉될 수 있는 실질적 수치를 객관화 하는 것도 제작자와 감독들에게 도움이 될 것 이다. 현장 뛰니까 그런 것들이 보이더라.
고민을 가졌던 것이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또 고민할 수 있었다.
원승환> 플로어 질문 받겠다.
관객> 영화사 진위원회에서 배급을 맞고 있다. 2009년 진화의 순간, 배급에 있어서 무엇이 화두인가 고민을 해봤다. 2009년에는 ‘워낭소리’ 라든지 ‘똥파리’ 등 굵직굵직한 영화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고. 컨텐츠가 시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다. 디지털 독립 배급 부분도 패턴이 있었고, 와이드 릴리즈가 가능했다. 그것이 ‘워낭소리’, '똥파리‘에 좋은 동력이 됐다. 엑세스가 편한 극장에서의 관객 관람이 가능해졌다. 상영관을 늘리다 보니까 독립영화들이 공급이 된 것 같다. 한주에 두 편씩 영화를 공급하는 과정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영화의 수익률은 떨어졌다. 가상 프린트비를 제공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관객이 되지 않지만 상영관은 계속 늘어났던 것 같다.
내년도 역시 12월달에 소규모 저예산영화들의 공급이 많다. 공급과잉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개봉일을 정하기 어려우니 배급사끼리 개봉일을 공유하고 조정하자는 것이었는데, 실무진행을 하다보면 알면서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하게 된다.
‘독립배급사네트워크’ 내부에서도 디지털 배급이 가능하게 돼서 회원사들인 배급사들이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있다. 영화가 확대개봉이 가능하게 됐지만 수익률은 어떻게 되나. 각사에게만 부담이 가는 부분이다.
유통망에서는 어느 정도 가격을 확 낮추는 고안이 필요한데, 배급사 네트워크로도 어렵고 고민이 어렵다
둘째로는 상영환경으로는 아트플러스 독립 라인을 많이 타게 된다. 작년을 기점으로 해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등 기존의 단관극장에서 멀티플럭스로 옮겼다는 것이 큰 변화다. 단관극장은 더 수익률이 떨어지니, 무비꼴라주 위주로 배급을 짜고. 예산이 한정돼있는 상황에서 멀티플렉스 상영이 되다 보니까 예술영화관들에 대한 수익률이 떨어진다. 배급사들도 강약을 조정해서 라인을 해야 되는데.. 고민하는 부분이다. 뚜FUT한 것은 나오지 않아 아쉽다. 2009의 독립영화 배급의 명암이 아닌가.
김조광수> 예술영화관 운영하시는 분들하고 독립영화 배급하는 사람들하고 세미나나 간담회를 조직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HD로 촬영했는데 DV 캠으로 방영하는 곳이 많다. 데크를 빌려 상영할 수 없다. 그럼 내가 왜 HD로 찍었냐는 생각이 든다. 화질이 좋게 찍었는데 나쁘게 해서 트는 것도. 상영하는 사람 나름의 문제도 있다. 의견을 모은 후 영진위를 압박하든 같이 결론을 내리든. 돈으로 줄지 아니든. 돈으로 주는 것을 꺼리더라. 효과적인 지원방법을 그들도 고민하는 듯하다. 올해 안에 모여서 해결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김화범> 회원사들의 전략 모임으로 줄어드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여전히 가져야 할 독립영화의 공공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긍정적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의 가치를 회원사, 배급사 여러 가지 소진되는 방식이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전히 우리 내부에서 고민해야 될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 제작자 자기 작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배급사는 그 내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해야 될 듯하다.
단순히 파는 느낌보다는 알리고 전달하고.
관객> 인터넷 저널의 서운회 기자다. 기사화 하려니 쉽지 않다.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 드리겠다. 공중파 채널에서 다큐 채널에 대한 프로가 따로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업에만 치중돼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아야만 되는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지만 공중파로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것은 어떨지.
원승환> 세미나를 통해서 몇 가지가 대응하고 풀어야 할 과제들 그리고 공유할 것이 나왔다. 2010년도에도 독립영화 여러분 만나고 진화하는 순간을 맞이해야 될 것이다. 이런 고민들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앞으로 다시 고민을 풀 대화할 자리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마친다.
정리 박윤아(서울독립영화제 데일리팀)
<원 나잇 스탠드> Episode 2. 이유림 감독 초겨울에 시작되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평일 오후에 영화를 관람하는 꿈을 꾸어봅니다. 시간은 느릿하게 흘러가고 극장 앞거리는 한산합니다. 을지로 3가역을 빠져나와 편의점에서 싸구려 커피를 한잔 사고 인디스페이스 앞까지 걸어오는 거지요. 때마침 비도 흐릿하게 내리고 바람까지 불었으면 좋겠어요. 여자는 극장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봅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그때 내리던 그 비, 특별할 것 없는 하루. 사람들은 회색빛 트렌치 코드를 입고 있습니다. 여자는 멍하니 극장 앞에서 서성거리다 1층으로 들어섭니다. 저 멀리서 귀엽고 환한 소년이 보입니다. 저음의 성숙한 목소리는 아닐지라도 젊음 그 자체로 빛나는 목소리의 소유자군요. 영화제 자원활동가인 듯 한 미소년의 예의바른 눈인사에 부끄러워하면서 무심하게 그를 지나칩니다. 하나 둘 심호흡. 씩씩하게 걸어 올라간 2층에는 아담한 테이블과 의자가 있습니다. 여자는 최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후미진 테이블을 찾아가 조용히 앉습니다. 둔탁한 영화의 사운드가 들립니다. 아마도 십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면 여자가 기다리던 영화가 상영될 것입니다. 여자는 짝퉁 명품인 듯 한 샤넬 가방에서 검은색 수첩과 검은색 모나미 볼펜을 꺼냅니다. 첫 페이지를 열어봅니다. 텅 비어진 페이지. 헤밍웨이가 습작을 했다던 몰스킨 플레인 수첩이군요. 여자는 몇 달 째 그 수첩을 가지고 다닙니다.
극장안의 소리가 어느덧 멈추고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여자는 멍하니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하나 둘 심호흡. 아마도 꽤나 어렵고 난해한 영화인가봐요. 촌스럽게 하트모양이 그려진 커플티에게 시선이 갑니다. 그와 그녀는 격정적인 어조로 어렵고 난해한 그 영화에 서로의 의견을 토로합니다. 그는 그녀의 취향을 이해할 수 없고 그녀는 그의 영화적 시각을 의심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으로 충만하지만 지금 이곳, 이 영화적인 공간과 시간 안 에서는 합의될 수 없는 감정을 예민하게 갖고 있습니다. 커플들이 멀어져갑니다. 이제 곧 영화가 시작됩니다. 자원활동가들의 달뜬 목소리가 2층 공간을 메웁니다. '영화가 시작합니다. 입장해주세요' 여자는 텅 비어진 노트를 바라봅니다. 검은색 모나미 볼펜을 꺼내들고 하나 둘 심호흡. 이렇게 적습니다.
-나의 미카엘/ 아모스 오즈(1939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남)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서른 살이고 결혼했다. 나의 남편은 미카엘 고넨 박사로 지질학자이며 성품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여자는 극장 안으로 들어섭니다. 사랑하는 힘을 되찾기 위해. 특별할 것 없는 하루. 대단한 변화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오후의 시간. 여자는 사랑하는 힘이 넘치기 위해 극장의 의자에 앉고 가방을 움켜진 채 영화의 오프닝을 기다립니다. 하나 둘 심호흡. 영화가 시작되면 비는 곧 멈출 거예요.
리뷰
<외박> 510일간의 투쟁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510일간의 투쟁. 해고 통보를 받은 이들은 일터에 다시 돌아가기 위해 월드컵 경기장 매장을 점령하고 파업을 시작한다. 노동자이지만,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감정선을 따라 정치적 연대로 이루어진다.
‘멸치도 생선이다. 제사상에 올려 달라!’라는 문구에서 볼 수 있듯,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이 4대 보험, 퇴직금, 상여금 지급 등을 받지 못하는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 또한, 근무기간과 상관없이 계약 해지를 당한다. 3,6,8이라는 계약 방식을 통해 18개월 미만의 노동자들은 부당한 계약 해지 통보에도 보호를 받지 못한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은 해고의 칼날로 변질한다.
하루 8시간 근무와 야간 근무 수당까지 포함해도 9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들. 대부분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이다. 그들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일터에 나왔고, 독립적인 주체로서 존중받길 원한다. 그러나 이름 대신 ‘아줌마’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상사에게 비하적인 발언을 듣는다. 이러한 부당한 근무 현장 속에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외박한다.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과 가족들은 불편하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적인 투쟁이 될지도 모르는 두려움. 직장을 다니면서 정당하게 요구하는 권리임에도 이혼을 당해야 하는 위기. 가정에 대한 소홀함. 여성 노동자들의 죄책감과 눈물은 공권력 행사로 인해 더욱 극적으로 변하고, 현실적인 고민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생계비 마련과 투쟁 사이에 찾아오는 괴리감이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을 통한 연대와 지원을 얻는다. 비례 대표제 전술을 사용하면서 대선 후보의 투표지지로 이루어지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정치적 연대에도 홈에버가 홈플러스로 매각된다. 결국, 여성 노동자들은 일터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510일 동안의 외박은 끝이 난다. 박다해(관객심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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