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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회오리바람>으로 벤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을 수상하며 기분 좋은 출발점에 선 장건재 감독이 서울독립영화제의 문을 두드렸다. 고2, 열여덟이라는 답답한 터널. 그곳을 지나온 소년소녀의 풋사과 같은 러브 스토리가 잔잔히 회오리친다. 정미래 기자(FILMON)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단편 중에도 십대들의 이야기가 많은 편이었는데, 언젠가 장편영화를 만들면 고등학생 남녀의 러브 스토리를 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다하는 십대의 사랑 이야기는 내 어릴 적 경험담이 투영된 것이다. 학창시절 연애를 많이 한 건 아니지만 꽤 깊은 사랑을 경험해봤다. 대학가기 전까지 만나지 않겠다고 쓴 각서, 자장면 배달 아르바이트 등 영화 속 에피소드는 대부분 내가 겪은 일이다.

대학 입학 때문에 부모에 의해 강제로 헤어지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고등학생의 연애란 것이 얼마나 힘들고 초라한 것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십대들이 연애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당사자들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대학가면 연애 실컷 할 건데 지금은 좀 참아라, 이런 얘기는 몇 십 년 전부터 부모들이 변함없이 하는 말이다. 고3을 앞둔 아이들의 연애이기 때문에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고3을 둔 부모들의 상황도 비중 있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사진제공_ 영화 월간지 <스크린>

혈기왕성하고 감정이 복받치는 열여덟 살의 풋풋한 연애에 주력하면서도 이들을 단순히 입시생으로만 대하는 가족과 사회의 억압적인 태도를 가시처럼 배치해 놓았던데.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넣으려고 한 건 아니다. 영화 속 상황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거의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이자, 고등학생을 둔 거의 모든 부모의 비슷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성 친구 만난다고 공부도 잘 안 하고, 연락도 없이 일주일 동안 여행을 감행한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라도 태훈과 미정의 부모처럼 반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그 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10년이 넘어서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것이다. 고딩이 연애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거다. 비록 서툰 감정 표현과 부모의 따가운 시선이 방해할지라도 그 경험을 통해 나중에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

밤에 태훈이 미정의 창문을 두드리는 장면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올랐다.
편집에서 삭제된 것 중에는 창문에 돌 던지는 장면도 있다. 찍고 보니까 굉장히 고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미정이 창살 사이로 태훈을 내려다보는 것도 그렇고,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집안이 원수인 게 아니라 대학 입시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연인.

자신을 피하는 미정을 찾아간 태훈이 “내가 앞으로 잘 할게” “걱정 마. 믿음을 줄 게”라며 무릎 꿇고 비는 장면이 재미있다.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대사를 풍자한 듯 보인다.
시나리오에 있던 대사가 아니고 태훈 역을 맡은 배우 서준영의 애드리브다. 어떻게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긴 한데, 그 나이또래 남자들이 여자 친구한테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서 평소에 잘 하지도 않는 좋은 말을 하기도 하잖나. 그런 귀여움이 잘 표현된 것 같아서 편집에서 살렸다.  

마지막에 미정이 걸고 있던 목걸이는 둘의 사랑이 희망적이라는 뜻인가?
남성 관객보다 여성 관객이 그 목걸이를 더 잘 발견해주는 편이다. 미정이 하고 있는 목걸이가 태훈이 미정에게 주려고 샀던 목걸이라는 걸 알았다면 나한테는 굉장히 고마운 관객이다. 촬영 현장에선 걱정을 좀 했다. 그 목걸이가 과연 스크린에 잘 비춰질지. 그런데 딱히 희망적인 의미라기보다는 내 바람이라고 볼 수 있다. 태훈이 미정에게 목걸이를 전해준 장면은 없지만 어떻게든 태훈의 마음이 전해지고 미정이 그걸 받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액션 신이 매우 사실적이다. 미정 아빠가 칼을 꺼내고 골프채로 유리문을 부수는 장면이랄이지, 태훈이 PC방에서 양아치에게 맞는 장면, 태훈이 오토바이 사고를 내는 장면, 미정과 동생의 육탄전 등.
이 영화는 리얼리티 드라마다. 액션이나 스턴트가 가미된 장면에서도 원칙은 하나다. 영화적인 활력을 가져가기보다는 사실적인 느낌이 들게 하자는 것. 감독이 이런 원칙을 갖고 있으면 배우들이 힘들어진다. 액션 장면이 실감나게 보였다면 그건 온전히 배우들이 몸을 안 사린 덕분이다. 미정이 여동생과 싸우는 장면은 정말 몸과 몸이 부딪히면서 만들어냈다. 이 장면을 통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미정의 감정을 좀 더 보여줄 수 있었다.

자장면 배달하는 태훈의 모습을 굉장히 자세히 묘사했다. 
직업을 피상적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실제로 자장면 배달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세밀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배우가 그 시퀀스를 찍을 때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서준영은 오토바이를 잘 타는 편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도 많지 않았는데, 그 장면을 사실적으로 연기하면서 캐릭터에 더욱 집중하게 된 것을 봤다. 

100일 여행에서 태훈이 팔의 석고붕대를 떼어 내는 장면이 의도한 것은?
태훈이 오토바이 같은 걸 타다가 팔을 좀 다친 상태로 여행을 간 건데, 그 곳에서 석고붕대를 강제로 뜯어낸다. 이건 뭔가 ‘해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태훈의 캐릭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석고붕대를 직접 뜯어낸다는 것 자체가 좀 개념이 없는 거잖나.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라는 점이다. 말이 되게 하는 건 정말 어렵다. 영화가 말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감정을 갖고 연기를 하느냐에 달렸다. <회오리바람>의 경우는 그 부분에 사활을 걸었다. 그 감정들이 쌓여 가면 영화도 말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걸 이뤄내는 게 어떤 것보다 중요한 연출의 목표였다. 만들어낸 이야기보다는 본질에 가까운 이야기,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

첫 장편을 마친 소감은?
그동안의 단편은 대부분 영화학교에서 만든 워크숍 작품이었다. <회오리바람>은 온전한 독립영화 작업으로는 처음 해본 것이다. 물론 많은 스탭과 배우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지도해준 스승 없이 제작한 영화였기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했다. 모든 결정들이 다 나의 책임으로 돌아오니까. 커다란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하고 싶은 얘기를 영화적인 기술로 온전히 표현하는 게 단편 작업의 1차적인 목표였던 데 비해, <회오리바람>은 관객에게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만들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나와서 10대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걱정하는 인터뷰를 봤다.
시나리오 쓰고 기획할 때는 교실 맨 뒷줄에 앉고 학교에 가끔 나오는 고등학생들이 좀 봐줬으면 했다. 1만 명 정도 추산한다.(웃음) 그런데 현실적으로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등급이 어떻게 나오든 영화를 볼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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