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우가 현실이 됐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언니들 말이다. TV 시리즈 이상의 미덕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스크린. 언니들은 돌아왔지만, 언니들을 바라보며 자라온 동생 입장에선 씁쓸하기 그지 없다. 코스모폴리탄의 비애와 환상에서 빗겨나 과시욕에 시달리는 언니들의 퇴화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다.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육아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 첫째 아이는 엄마가 둘째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말할 수 없는 질투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한 전문가는 동생을 안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는 큰 아이의 분노를 '본처가 남편이 자기 앞에서 애첩을 끼고 있는 걸 목격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럴 때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행동이 '퇴화'라고 한다. 멀쩡하게 잘 크던 아이가 갑자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된다거나, 말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이유없이 보채고 울고, 밥 대신 우유를 고집하고, 마냥 안아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다. 어린 동생과 비슷하게 행동함으로써 지난 날 자신이 독차지했던 엄마의 애정과 관심을 되찾고 싶다는 욕구의 발현이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에 말 그대로 몸부림을 친다는 것이다.사랑 받고 싶어 몸부림치는 것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물론 인지상정이다. 자연스런 성장의 흐름을 저버릴 정도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나.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퇴화는 어쩐지 이해보단 씁쓸함이 앞선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언니들 말이다. 혹자는 구두 콜렉터에 대한 거침없는 커밍 아웃을, 혹자는 뉴욕의 칼럼니스트란 도도한 정신 노동자의 한량 라이프를, 혹자는 명품과 보세 패션의 상큼한 앙상블 때문에 캐리와 친구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열 두 제자 모시듯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 여성의 바이블이란 수식어를 달았다면, 그 현대 여성들 자존심 좀 세워줬으면 좋았을 뻔 했다.
TV 시리즈에서는 30대 여성이 20대 여성과의 어쩔 수 없는 경쟁 구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솔직하고 유의미한 질문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 속 캐리는 10대, 혹은 20대 소녀들 앞에서 자신의 지혜를 자랑스러워하기 보다는 근사한 드레스를 자랑하거나 루이비통 가방을 선물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할 뿐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패션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겠지만, 그 패션이 전부가 되어버렸을 때도 과연 가능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언니들 왜 이러실까 싶었다. 인기에 힘입어 현실감을 팽개쳐버린 그녀들은 (더 이상 섹시해 보여야 할 이유를 찾지 않는 미란다마저도) 화려한 의상 속에 깊숙이 몸을 묻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려한 드레스 자락은 하염없이 바람에 흩날린다. 이제껏 <섹스 앤 더 시티>의 빅팬을 자처해온 이 땅의 여자들을 졸지에 할리우드 패션 앤 뷰티 클라스 학생으로 전락시키는 듯한 태도는 내용 면에서도 다르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가 됨으로써 뉴욕의 40대 싱글 여성도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이고자 했던 캐리는 지난 TV 시리즈에선 교훈 축에도 끼지 못했던 주제를 가지고 급기야 자신의 신파 로맨스를 완성한다. 누군가의 세번째 결혼과 누군가의 첫번째 결혼에 대한 기대치는 다를 수 있다는 것(빅), 세상 무엇보다도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것(사만다), 부부생활의 중요성(미란다), 남들에 비해 너무 행복하면 오히려 불안하다는 것(샬롯) 같은 이야기는 너무 뻔하기도 하거니와 슬쩍 주제만 던지고 대충 수습하며 할 얘기 다 했다는 투로 흘러간다. 30분 분량 내에서도 캐리의 의문이 인물들 사이에서 유기적으로 얽히며 생생한 현실감을 얻었던 구성 방식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인물들의 고민은 각각 따로 돌며 난데없이 치고 빠지기 일쑤. 네 명의 친구들을 하나의 고민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여성 공동의 화두와 유의미한 해법으로 귀결했던 미덕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언니들을 보게 되다니. 샬롯과 미란다의 결혼식보다도 캐리의 결혼식을 훨씬 호들갑스럽게 했어야 했던 이유가 고작 비비안 웨스트우드 웨딩 드레스 때문이라면 언니들 우정이 너무 얄팍한거 아닌가.
그래 어쩌면 딱 여기까지가, 이 도시가 여성을 이해하는 깊이일지 모른다. 흔히 '칙릿'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길 원하는 여성용 문화상품의 이면에서는 종종 비아냥 섞인 뉘앙스가 읽힌다. 적당히 최신 유행 상품과 현실 생활의 누추함을 끼워맞추면 여자들 입맛을 맞출 수 있겠지 하는 안일한 계산들 말이다. 저 잘났다는 뉴욕이 이럴진데, 아니 뉴욕은 그렇다 치고 서울은 뭐 다른가. 얼마전 TV 드라마로 시작된 한국 칙릿계의 간판스타 <달콤한 나의 도시>도 내 눈엔 왜이리 마뜩치 않은 것일까. 극중 은수(최강희)가 옛 애인의 결혼식 날 출근을 했다며 평일 지하철 열차에서 고생을 하는 장면(대관절 어느 평범한 결혼식이 평일 오전에 열린단 말인가), 한강변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의 높은 하이힐을 바라보며 요즘 애들 관절 걱정을 하던 장면(바로 몇 분 전에 비친 그녀의 하이힐도 엄청났다) 등 어설픈 설정들은 '칙릿' 코드들이 어떻게 간편한 공산품으로 변질되는지를 단숨에 드러내고 만다.
칙릿 대중 문화 상품 속 그녀들의 누추한 현실이 판타지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여성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판타지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의 계산은 열광은 커녕 분노를 일으킨다. 하긴, 어려보여야 사랑받는다는 식의 동안 신드롬에 빠진 도시에서 정신적 퇴화 쯤이야 별 일 축에 속하기야 하겠나. 송순진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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