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쏘우> 시리즈를 싫어합니다. 결국 인생의 소중함을 강변하려고 살인을 자행한다는 내용인데, 제 눈엔 억지로 가져다 붙인 설정으로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아무렴 인생의 소중함을 알리는 일에 살인보다 옳거나 나은 방법이 없을까요? 일단 폭력 시퀀스는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잘 짜여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척이나 기괴한 느낌의 장치들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시퀀스들을 통해, 매우 정교하게 희생자들을 찢고 자르고 부수지요. 그 카타르시스가 제법 대단하리라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확실히 지나치게 눌려 있는데다가 욕구불만에 빠져 있어요. 저임금, 과노동 상태에 빠져있는 노동자들과 별 볼일 없는 자본가들은 소비사회가 키워놓은 빌어먹을 욕망과 더불어 지독한 좌절감을 품고 있지요. 그러니까 날씨라도 덥거나 파리라도 귀찮게 하는 날엔 누군가를 죽이고 싶거나, 죽도록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쏘우> 프랜차이즈의 역할은 바로 그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쏘우> 시리즈의 얼개는 이렇습니다. 말기 암환자인 직쏘가 일련의 희생자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해 나름 쫀쫀한 퍼즐과 장치들을 준비합니다. 그리고는 곧 고문과 살인(엄밀하게 말하자면 처형)이 이어지지요. 기술은 다양합니다. 자기 다리 자기가 자르기, 자기 피부 자기가 벗기기 등 매우 심각하게 고민한(것 같은) 고통의 시퀀스들이 시원하게, 말 그대로 시원하게 관객의 안구를 강타합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울려 퍼지는 “네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와 그 비슷한 직쏘의 개똥철학은 이 난장 학살극에 끌리는 관객의(좀 더 엄밀하게는 인간 본연의) 천박한 취향, 그리고 강렬한 순간을 학수고대한 순박한 고어 마니아들에게 서푼어치 품격을 부여하지요. 직쏘는 신기한 캐릭터입니다. 적절히 윤리적이었던 인물이 모종의 사건들을 통해 분노와 의지를 내면화했고 <세븐>(1995)의 존 도(케빈 스페이시)처럼 청교도 살인마로 재탄생했다는 식인데, 그럭저럭 멋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공포영화의 기둥으로는 안성맞춤입니다. 돌이켜보면 좋은 요소들이 많았어요. <쏘우> 시리즈는 상품으로서 매우 적절했던 것입니다.
고문과 처형의 기술을 업데이트하다
기술과학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쏘우> 시리즈의 살인 시퀀스와 이를 둘러싼 사건, 설정들은 매우 흡족한 결과물이자 상품입니다. 밀실에 감금된 인물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과정이나, 형사와 직쏘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추격전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한편, 현란하면서도 지저분한(그래서 더 무서운) 고문기구들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멀티 플롯, 멀티 캐릭터, 멀티 고문을 한 데 묶는 짜임새있는 기술력은 적당히 허술한 요소들을 스릴러 특유의 에너지로 엮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편마다 업데이트 되는 설정들도 신선했어요. 가령 <쏘우 2>는 밀실에 감금된 희생자들의 시선과 그 밀실을 찾으려 애쓰는 수사관의 관점에 주목했으며, <쏘우 3>는 직쏘의 뇌수술이라는 기상천외한 설정을 첨가한 것은 물론, 직쏘가 미리 계획해 뒀던 미션을 수행하는 새로운 시간개념을 추가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에는 부정적인 평가도 많았습니다. 영화 전체에서 단 15초 동안 존재를 드러내며 중의적 해석의 여지를 남겼던 1편의 직쏘와 달리 이후의 직쏘들은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말이 많아진 건, 늘어난 억지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말이 안 되는 상황과 캐릭터들을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니 그럴 수밖에요. 시리즈는 갈수록 개연성을 희생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삼스레 잔인성이라는 요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시리즈가 잔인해지면 잔인해질수록 관객의 호응이 높아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쏘우> 시리즈에서 개연성 누수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이 시리즈의 목표가 기본적으로 잔인성 창출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잔인함에 대한 이런 매료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현대만의 트렌드일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사실 잔혹한 구경거리는 매우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유사 이래 많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고문과 사형을 이용해왔어요. 개중에 나름 수완가라 불릴만한 이들은 고문과 사형을 구경거리로 활용하면 그 효과가 훨씬 강해진다는 사실까지 깨달았습니다. 평소 억압되어 있는 피지배자들에게 고문과 사형을 전시하면 금기는 쾌락으로, 폭력은 공포로 치환됐어요. 통치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요. 지배 도구로서의 쾌락과 공포는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는 장치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쏘우>시리즈에 드러나는 기상천외한 고문 장치와 설교조의 교훈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활용되었던 통치기술로써의 고문과 사형을 있는 그대로 영화 속에 불러들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은 돈, 하지만 게임은 끝났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이제 흥행입니다. 이전의 고문과 사형이 지배를 위함이었다면, <쏘우>의 고문과 사형은 영화의 흥행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그럴싸한 교훈들은 적당히 관객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을 뿐 진정한 가르침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6편에 이른 지금의 <쏘우>시리즈는 그냥 엽기고문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상업영화로 6편까지 나왔다는 것은 나름 대단한 성취이겠죠. 하지만 아무래도 기만적인 상술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가 주창한 삶의 소중함은 백화점 매대에 꽂힌 세일문구와 마찬가지입니다. 말만 소중한 삶을 운운했지, 시체수를 늘리는 데에만 급급하니까요.
고문과 처형의 기술은 나름 발전을 거듭해왔죠. 그런데 이게 웃긴 겁니다. 인생은 소중한데, 살인이 재밌으니 말이죠. 이제 멈출 때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불만과 분노가 쌓여가는 요즘이라지만 <쏘우: 여섯 번의 기회>를 보느니 <아바타>를 다시 보겠습니다. 이쯤에서 직쏘의 명대사를 인용해야겠군요. “게임은 끝났습니다”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 2010년 중에 7편까지 개봉할 예정이라는군요) 유주하 기자(FILMON)
<쏘우> 2004
감독 제임스 완 | 흥행성적 1억 3백만 달러 | 살인마 직쏘 | 바디 카운트 5
“게임은 끝났다” 직쏘(토빈 벨)의 대사처럼 <쏘우>는 등장하자마자 할로윈 시즌 흥행 기록을 끝장냈다. 저예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짜임새 있는 스릴러의 구조를 피칠갑 고어물에 안착시켰다. 제임스 완 감독과 배우겸 각본가로 참여한 리 워넬은 제작비 120만 달러로 북미 흥행수익 55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다. 돌이켜보면 나름 산뜻한 영화였다. 주인공 고든이 자신의 발목을 톱으로 자르는 장면에서 관객이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고통스런 표정뿐이었다. 이어진 후속작들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세발의 피 같은 폭력이자, 무척이나 영화적인 표현력이었다. 여하튼 그 기념비적인 엽기설정(이 살인들은 모두 교훈을 위한 것이다!) 덕분에 폭력에 대한 관객들의 욕망은 나름 우아한 품격을 부여받았고, <쏘우> 시리즈의 장구한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쏘우 2> 2005
감독 대런 린 보우즈만 | 흥행성적 1억 4천 7백만 달러 | 살인마 직쏘, 아만다(직쏘의 딸) | 바디카운트 10
<쏘우 3> 2006
감독 대런 린 보우즈만 | 흥행성적 1억 6천 4백만 달러 | 살인마 직쏘, 아만다(직쏘의 딸) | 바디카운트 72편의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형사 에릭은 자신의 발목을 잘라 탈출을 시도한다. 한편 그의 동료 케리(디나 메이어)는 직쏘의 새로운 살인사건을 두고 혼란에 휩싸인다. 그녀는 이전까지의 사건들과는 달리, 직쏘가 제시한 퍼즐을 풀더라도 희생자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쏘우3>의 시작은 이렇게 반칙으로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 직쏘의 건강상태를 영화의 전면에 들여놓기도 한다. 뇌종양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직쏘와 그의 딸 아만다가 뇌 전문의학박사 린을 납치해 직쏘의 수술을 강제한다. 다양한 설정들을 새로 이입한 것은 물론, 기존의 인물들이나 설정들을 잘 활용한 덕분에 나름대로 완성도와 새로움이 공존했다. 하지만 비약적으로 늘어난 직쏘의 수다엔 수많은 팬들의 원성이 따랐다. 바야흐로 설정에 설정을 더하는 형국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쏘우 4> 2007
대런 린 보우즈만 | 흥행성적 1억 3천 9백만 달러 | 살인마 호프만 | 바디카운트 9결론부터 말하자면 새로운 직쏘가 탄생한다. 베테랑 형사 호프만(코스타스 맨다이어)은 차세대 직쏘를 꿈꾸는 청교도적인 살인마다. 영화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새로운 수사진을 투입한다(직쏘의 사건을 담당한 형사들이 연이어 살해되자 벌어진 조치다). 그렇게 호프만이 등장하고, 그의 상대역 FBI요원 스트라움(스콧 패터슨)이 등장한다. 직쏘의 전부인 질(벳시 러셀)이 등장해 직쏘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의 피해자들에 대한 단서까지 흘러나온다. 이미 죽어버린 직쏘의 과거를 활용(만들어내는)하는 기술은 그야말로 명불허전. 전 부인을 이용하는 설정을 보고 있자면 케이블방송의 저예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연상되지만 어쨌든 말이 되게 만드는 기술 하나 만큼은 진정 뛰어나다. 쏘우의 영향력을 통해 살인을 이어가는 방식에서 이후 <쏘우> 시리즈의 행방을 제시한 작품이다.
<쏘우 5> 2008
데이빗 해클 | 흥행성적 1억 1천 3백만 달러 | 살인마 호프만 | 바디카운트 6
5명의 희생자들이 역시나 폐쇄 공간에서 생존 게임을 벌이는 동안, 4편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스트라움 요원이 차세대 직쏘, 호프만을 추적한다. 기존의 설정들과 캐릭터들을 복기하기 때문에 기대할 것은 오직 하나, 살인의 기술이다. 하지만 특정한 신체의 부위, 서로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게임이 그다지 새롭지가 않다. 이미 다섯 번째니까. 굳이 의의를 찾는다면 차세대 직쏘 호프만의 시점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관객의 관심 영역이 희생자는 물론, 가해자에게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이것도 생각해보면 이미 전편들에서 여러 차례 시도된 것이다). 이렇듯 진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든 전 세계에 걸쳐 1억 달러를 수금한 <쏘우> 시리즈의 위력이란 새삼 대단한 것이다. 새롭게 연출을 맡은 데이빗 해클에게도 분명 만족스런 결과였을 것이다.
<쏘우: 여섯 번의 기회> 2010.1.7
케빈 그루터트 | 흥행성적(북미) 2천 7백만 달러 | 살인마 호프만, ? | 바디 카운트 ?
호프만 형사는 스트라움 형사의 사체를 이용해서 자신의 범행을 스트라움에게 뒤집어씌운다. 여기서 5편에 잠시 등장했던, 직쏘의 유품이 다시 등장한다. 이를 전달 받은 호프만이 직쏘를 대신해 고문, 처형 의식을 계속한다는 내용. 여기에 제법 재미난 마지막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시리즈가 언급했던 윤리, 도덕에 대한 강박을 가해자에게까지 대입하는 한편, 직쏘의 가족 관계와 영향력을 복기하는 등, 여태까지 나왔던 모든 <쏘우>시리즈에 대한 집대성이자 총정리라고 부를만하다. 2009년 10월 북미에서 공개됐을 때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 흥행 성적이 기대만큼 좋질 못했다. 시리즈에 대한 피로 현상일 것이다. 무엇보다 비슷한 시기에 좋은 영화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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