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소년 퍼시 잭슨(로건 레먼)은 사실 반인반신입니다. 반인반신. 어감이 조잡한가요? 영화에선 ‘데미갓’이라고 하더군요. 좀 너무 뻔하지만 퍼시의 Percy는 페르세우스의 Perseus를 변형한 이름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퍼시라고 부르기 보다는 퍼스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지요. 그러니까 이건 그렇게 숨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신과 사람의 피를 모두 이어받은 데미갓, 바로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와 비슷한 존재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의 운명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리스신화의 모든 것이 지금 우리의 삶과 온전히 공존한다는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의 세계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피해자는 신들의 왕, 제우스(숀 빈)입니다. 도난당한 물건은 그 스케일이 과연 신들의 왕이라는 제우스의 물건답습니다. 그는 TV도 오디오도 아닌 ‘번개’를 도둑맞은 것입니다. 다소 황당한 것은 제우스가 퍼시 잭슨을 의심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퍼시가 자신의 경쟁자 포세이돈의 아들이기 때문이겠죠. 제우스는 평범하다 못해 찌질하게 살아가고 있는 퍼시를 번개 도둑으로 몰아갑니다.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은 노골적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설정들을 차용합니다. 평범하지만 영웅의 운명을 타고난 퍼시 잭슨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그가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입소(?)한 곳은 데미갓들의 호그와트(하지만 해병대 캠프처럼 보이는군요)나 마찬가지. 퍼시는 해리 포터처럼 야무진 친구들도 만납니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모양새도 똑같아요. 그리고 그는 모험에 나섭니다. 영웅의 운명을 짊어지고서 말이죠.
신화와 새로운 이야기를 잇는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들이 제법 흥미롭기는 합니다. 메두사나 페르세포네와 관련된 신화의 에피소드들이 나름의 창조적인 이야기 안에서 새롭게 재구성됩니다. 특수효과도 삼삼하지요. 퍼시가 번개를 집어던지거나, 물을 다루는 모습들은 관객이 기대한 상상 속의 장면들을 적당히 그럴싸한 수준으로 재현합니다.
하지만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은 그 벤치마킹의 대상인 해리 포터 시리즈에 비해 그 완성도가 현격하게 떨어집니다. 문제는 유기성입니다.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은 무척이나 계산적인 안배를 통해 캐릭터, 신화, 새로운 이야기들을 구상하고 있지만 그 이음새가 무척이나 엉성합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거슬리는 부분인데, 퍼시 잭슨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여행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이 뻣뻣하고 어색한 스토리텔링으로 얼기설기 이어집니다. 행동의 이유와 결과, 캐릭터의 심리상태 간에 적잖은 거리가 존재하지요.
물론 이 모든 어색한 인과관계나 억지스런 캐릭터를 무시하고, 낭창낭창한 기분과 적당히 쿨한 척하는 유머, 그리고 나름대로 호사스런 특수효과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대를 낮추는 편이 나을 겁니다. 저로선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이런 수준에서 만족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해리 포터 1, 2편의 영광이 그렇게나 그리웠던 것일까요? 마음이 아주 급했나 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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